명절과 가족 돌봄

[ 현장칼럼 ]

황주연 관장
2024년 09월 25일(수) 08:50
민족 대명절 추석을 지나며 우리는 만나는 이마다 덕담과 격려로 다정한 인사를 나눴다. 또한, 멀리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따뜻한 정을 나눴다.

하지만 많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명절조차도 평안하게 지내지 못한다. 나이 든 부모님을 돌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돌봐야 할 대상이 치매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부모자식 간, 혹은 가족 간 사랑이나 도리와는 별개로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자신을 키워주고 돌봐 준 부모님께 보답하는 마음과 효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고나 장애로 어려움에 처한 가족구성원을 돌보는 것도 흔히들 당연한 일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 힘든 돌봄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면서 가족 간에 모진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관계를 아예 끊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가 하면 서로를 탓하며 비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나이 든 부모나 아픈 가족에 대한 끝없는 돌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노노케어(노인이 노인을 돌봄)'나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처럼 긴 병과 오랜 간병은 가족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최근 '간병 자살'이라는 사회적 용어까지 등장하게 했다.

한국은 2025년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는 돌봄, 부양의 대상이 대부분 노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단편적인 수치일 뿐이다. 장애인들의 경우 10년 혹은 많게는 20년까지 비장애인에 비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고령장애인을 '장애'와 '노화'를 동시에 경험하는 50세 이상의 장애인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경기복지재단 조사 결과 전국 비장애인 고령화율은 18.0%이지만 장애인은 48.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의 조기노화를 고려한 50세 기준으로 살펴보면, 고령화 속도가 더욱 가파른 것을 알 수 있는데 2009년 66.8%에서 2022년 80.2%로 13년간 13%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고령화된 장애인, 노화에 의한 장애인, 노인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지만 현 복지정책은 이 모든 유형이 만 65세가 되면 노인복지정책에 편입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장애인은 각종 복지제도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립재활원에 따르면 2020년 사망한 장애인 평균 연령은 76.7세로 전체 국민의 평균 수명인 83.6세에 비해 7살이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유형별로 사망 평균 연령은 자폐성 장애인이 23.8세로 가장 낮고 청각장애인이 84.1세로 가장 높았다. 기타 뇌전증장애인 55.8세, 지적장애인 55.9세, 간장애인 59세로 낮게 나타났다.

고령화된 장애인은 조기노화, 이차적 장애로 인해 신체 기능적 측면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며 상대적으로 주관적 신체건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고 전생애 기간 중 노년기를 준비할 수 없기에 나타나는 우울감과 스트레스의 증가, 직업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에서의 제약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고령장애인에게는 돌봄이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지만 많은 가정에서 아직도 가족이 돌봄의 역할을 감당하는 현실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는 민족 대이동이 이뤄지는 긴 연휴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가족에 대한 돌봄의 무게로 명절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웃들이 많다. 평소 돌봄 서비스 지원을 받아 왔어도 지원인력들이 휴가를 가기 때문에 명절에는 돌봄 부담이 온전히 가족의 몫이다.

이제는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내 주변의 아픔과 슬픔에 귀 기울이고 송편 한 접시라도 함께 나누며 위로할 줄 아는 크리스찬들의 진정한 명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황주연 관장 / 구립동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운영법인 동안복지재단)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