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낮은 곳으로 갈 용기

[ 목양칼럼 ]

김종하 목사
2024년 09월 11일(수) 09:09
나이 서른이 채 되기 전 내려왔던 교회에서 6년 정도를 있다가 지금 목회하는 곡강교회로 임지를 이동했다. 같은 시찰 소속의 교회였는데 이곳 장로님이 곡강교회로 와달라는 요청에 교회를 이동하게 됐다. 요즘처럼 이력서를 낸 것도 없었고 교회에 와서 선을 보이기 위한 설교를 한 적도 없이 그렇게 교회를 옮기게 됐다.

처음 시무지였던 교회는 필자의 첫사랑과도 같았다. 그러다 보니 막상 옮기는 날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아프던지 눈물로 그곳의 사랑하는 성도들과 이별을 하고,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지금의 교회로 오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때 큰아이가 5살이었다. 엄마 아빠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낯설고 두려웠는지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숨죽여 가며 우리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흥해에서 곡강 마을로 넘어가는 짓떼이라는 작은 고개를 넘는데 큰아이가 이렇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빠, 우리 더 골짜기로 이사 가는 것 같아요." 아이의 말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그때 흥해에서 곡강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농로처럼 되어 있었고 곡강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인 짓떼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이, 그 길은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어서 옛날 곡강으로 시집을 오는 신부의 혼수품이 장화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이니 아이의 눈에도 그렇게 비쳤겠다 싶다. 하지만 아이의 한 마디는 나의 가슴에 박혀 깊이 남았다.

이사를 하고 처음 부임예배를 드리면서 필자는 곡강의 강단에 처음으로 섰다. 그런데 앞에 앉은 성도의 숫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필자가 세려고 의도 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순간 필자의 마음에는 이 교회를 너무 모르고 잘못 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순간의 작은 흔들림이었다.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밤에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큰아이가 이사하던 날 했던 말과 그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흔들렸던 필자의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면서 '우리 다음에 한 번 더 교회를 옮기게 되면 여기보다 더 골짜기, 더 작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자'라는 이야기를 결론적으로 나누었다. 그날 그렇게 말해주고 함께 해주는 아내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목회자의 길은 교회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예수의 제자여야 한다. 예수의 제자는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그분을 뒤따르는 사람일 것이다. 예수님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분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삶이셨다. 그래서 빌립보서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가는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녔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빌 2:5~7 새번역)." 예수님의 길은 낮아짐의 길이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셔서 대부분을 사시고 사역하셨던 곳도 중심부 예루살렘이 아니라 주변부 갈릴리였다.

필자가 농촌을 사역지로 선택했던 근본적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이 땅으로 낮아지신 예수, 갈릴리의 예수', 그분을 따르는 길은 도시보다 농촌이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필자에게 국한되는 이야기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자꾸만 뭔가가 쌓이게 되고 이루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더 앞서지 않는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로 삶의 경계에 설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필자는 예수의 제자로서의 길을 되돌아보곤 한다. 거기에서 더 골짜기로 갈 용기가 있는가를 점검해 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스스로에게 하는 그 대답이 젊을 때보다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길을 잃지 않은 인생이란 삶의 조건들에 둘러싸여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더 낮은 곳으로 가려는 용기를 가진 인생으로 남는 것이리라. 그래서 지금도 그때 큰아이의 말은 필자에게 인생 화두가 되어 되묻는다. "너는 더 낮은 곳으로 갈 용기가 있는가?"



김종하 목사 / 곡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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