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군선교의 새 꿈을 꾼다

[ 라떼는말이야 ]

구재서 목사
2024년 09월 11일(수) 13:33
육군훈련소 연무대 군인교회 새성전 헌당예배에서 예배당 관리 이전 증서를 받고 있는 당시 훈련소 소장 구재서 목사.
매주 2~3000여 명의 젊은 장정이 입영한다. 상시 1, 2만여 명의 훈련병이 상주하며 훈련하고 있다. 3000여 명의 기간 장병은 그들을 훈련시키고 지원한다. 매년 12만여 명의 훈련병이 이곳을 거쳐 간다. 매주 2만여 명의 국민이 입소식, 퇴소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일 년이면 약 100만여 명의 국민이 방문하는 곳, 1951년 창설 이후 현재까지 약 900만 명이 그곳에서 훈련받았다. 충남 논산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훈련소의 이야기다. 졸업생 숫자로 치면 단연 1등으로 가히 전 국민의 학교라 할 수 있다.

군에 입영하는 풍경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져 왔지만, 지금도 그곳에는 여전히 눈물과 아쉬움, 후회와 안타까운 마음들이 공존한다. 보내는 이와 남게 되는 이 사이에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필자는 이곳 육군훈련소에서 창설 이래 최초로 가장 오랫동안 지휘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게 되었다. 2016년 연말부터 2019년 연말까지 꼬박 3년을 재직했으니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재직 중 5000석 규모의 세계 최대 군 교회인 '연무대 군인교회'를 하나님 앞에 헌당(2018년 12월 22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

육군훈련소와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MEAK)가 중심이 되고 군에 군종목사를 파송한 대한민국 10개 교단, 그리고 크고 작은 수천여 교회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개인들의 헌신이 한데 모아져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교회와 교단이 분열을 지속해 온 상황에서 '군선교'라는 사명 하나로 교단을 초월하여 모두가 하나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청년이 교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군선교는 특정교회나 특정 교단만의 사명일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그러기에 서로 협력해야 한다.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만 하는 곳이 바로 육군훈련소이다.

필자가 육군훈련소에서 재임했던 3년여 동안 총 21만여 명이 세례를 받았다. 2주에 한 번 꼴로 토요일에 대략 3000여 명에서 5000여 명 정도의 훈련병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장면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다시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기적의 현장이다.

집단 세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5주라는 짧은 기간 훈련받고 배출되는 육군훈련소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일 수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그들을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 한번 세례를 베풀 때마다 군 외부에서 50여 명의 목사님이 오셔야 하고, 돕는 인원까지 하면 수백 명의 헌신자가 필요한 사역이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이일을 휴일마다 연중 쉼 없이 섬기고 있는 소수의 연무대 군인교회 간부와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작은 자일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일 것이다.

매 주일 저녁에는 전국에서 육군훈련소로 달려오시는 귀한 사역자들이 있었다. 말씀을 뜨겁게 전해주신 목사님, 찬양과 악기로, 때론 연극과 무용으로 복음 전하는 수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군선교는 함께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한 번에 5000여 명이나 되는 훈련병들에게 주기적으로 짜장면으로 섬겨주신 분들, 갓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맛난 와플로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 주신 분들의 헌신을 우리는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기억해 주실 것이다.

훈련병들의 군 생활환경은 객관적으로 볼 때 과거보다 좋아졌다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훈련소 생활은 본인들에게는 여전히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임이 틀림 없다. 입대 전 '개인'에서 입대 후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해야 하는 정체성 혼란으로부터, 본질적 자유의지의 속박 등 군 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정인 것이다.

훈련병 시절은 여전히 배고프고 무언가 부족을 느끼는 시기이다. 그런데 부족함의 축복일까? 오히려 그 부족함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훈련받으면서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위로를 필요로 하고, 정신적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게 되며, 영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마음속의 빈 공간, 하나님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생의 본질적 문제와 함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훈련병들은 5주간에 10번의 예배를 드리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자들도 점차 생겨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도 하고, 상처와 아픔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들도 있다. 훈련 가운데 경험한 하나님을 매주 2~300명 가량이 간증문을 제출하곤 했다(매주 간증문을 접수하여 한편의 영상편지 형태로 제작하여 주일예배시 상영). 이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훈련병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며, 젊은이들도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알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이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예배를 못 드리게 되었고, 세례식은 중단되었으며, 훈련병들의 뜨거운 실로암 찬양은 멈추었다.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훈련 과정을 마쳐야 되는 훈련병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지금은 회복 중이다. 군선교 현장이 다시금 뜨거워지길 간구한다. 차세대, 다음 세대를 위해 너와 나 구분 없이, 교단의 구별 없이 마음을 모으고 협력해야 할 때다.



구재서 목사 / 초대교회·육군훈련소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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