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칼럼 ]
남택률 목사
2024년 09월 02일(월)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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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아는 일이 쉽지 않지만, 정답대로 사는 일은 더 어렵다. 무엇보다 지도자로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서든 높은 도덕성과 검소하고 순결한 모습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이중적이어서는 안 된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지도자의 권위는 바로 실추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교회에 들어올 때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은 반드시 유턴(U-turn)해서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급한 나머지 바로 좌회전하여 꺾어 들어오다 사고가 많이 난다. 그래서 광고 시간에 교통 법규를 잘 지키라고 강하게 말했다. 법규를 잘 지켜 사고를 방 지하고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 달라고 수차례 얘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장을 맡고 있는 권사님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사님, 죄송한데 혹시 무단횡단하신 적이 있나요?" "왜 그러시죠?" "다름 아니라 저희 목장에 새 가족이 한 분 계시는데, 목사님이 교회 앞에서 무단횡단하신 걸 본 모양이에요. 제게 하는 말이 교통 법규를 잘 지키라고 말씀하신 목사님이 왜 정작 자신은 법규를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옵니다."
우리 교회 앞 횡단보도는 양쪽의 동선이 길다. 그래서 교회 앞 식당에 갈 때, 슬슬 주변을 살피며 4차선 도로를 몇 번 무단횡단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새 신자가 보았고 목장 리더를 통해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난감했다. 그래서 바로 궁색하게 튀어나온 말이 "말은 배우고, 행동은 배우지 말라 하세요"였다. 농담 비슷하게 상황을 모면하고 나서 내 모습을 보니 참 우습고 실망스럽게 보였다. 내 모습을 누군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의 행동반경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감출 것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도자로 존경받고 살기가 쉽지 않다. 동네나 사회에서는 좋은 것만 보여주며 살 수 있지만 가깝게 사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는 정말 어렵다. 가정에선 아내와 자녀에게 존경받기가 어렵고, 교회에선 가장 가까운 부교역자와 당회원들에게 존경받기가 어렵다. 가까운 곳에서 늘 나를 보고 있고, 나의 행동과 생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사방이 보이는 유리관 속에 서 있는 인형과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교인도 알고 세상도 알고 있는 뻔한 일들을 생각 없이 행동해선 안 된다. 교회의 정직성과 정체성이 흔들려선 안 된다. 교회의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비난의 표적과 비호감의 냉소주의를 만난다.
세상은 교회와 지도자에게 높은 도덕성과 윤리를 요구한다. 그래서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회복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부도덕성에 휘말리면 이단과 사이비에게 침투할 틈새를 제공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보이는 세상이다. 꼼수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신다. 멋지고 화려한 설교나 간증, 기적과 체험도 중요 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삶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지금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하다.
이제 109회 총회 부총회장을 뽑는 일은 우리에게 또 한 번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선거가 과열되거나 불필요한 경쟁으로 우리의 민낯을 보여선 안 된다. 세상의 변화에 앞서가며 세상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파급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가 뽑아야 할 지도자는 인격적인 결함이 있어선 안 된다. 어떤 사안이든 성경적 가치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보편성과 일관성 그리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건강함이 있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 지도자는 절대 세워선 안 된다. 총회를 놀이터로 알고 인기 영합주의나 성과주의로 일하는 사람은 예측이 불가능한 퍼포먼스로 자신의 정체를 언젠가는 드러낸다. 언론에 자기 얼굴 내기를 좋아하고 성과를 대내외에 알리길 즐긴다. 그리고 속 빈 강정처럼 일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이런 지도자를 갖고 있는 단체나 조직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백성은 지도자의 수준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바뀔 수 있다. 우리는 각기 개체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지체들을 위한 마디와 힘줄의 공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다. 그래서 문제는 지도자다.
남택률 목사 / 광주유일교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교회에 들어올 때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은 반드시 유턴(U-turn)해서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급한 나머지 바로 좌회전하여 꺾어 들어오다 사고가 많이 난다. 그래서 광고 시간에 교통 법규를 잘 지키라고 강하게 말했다. 법규를 잘 지켜 사고를 방 지하고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 달라고 수차례 얘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장을 맡고 있는 권사님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사님, 죄송한데 혹시 무단횡단하신 적이 있나요?" "왜 그러시죠?" "다름 아니라 저희 목장에 새 가족이 한 분 계시는데, 목사님이 교회 앞에서 무단횡단하신 걸 본 모양이에요. 제게 하는 말이 교통 법규를 잘 지키라고 말씀하신 목사님이 왜 정작 자신은 법규를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옵니다."
우리 교회 앞 횡단보도는 양쪽의 동선이 길다. 그래서 교회 앞 식당에 갈 때, 슬슬 주변을 살피며 4차선 도로를 몇 번 무단횡단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새 신자가 보았고 목장 리더를 통해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난감했다. 그래서 바로 궁색하게 튀어나온 말이 "말은 배우고, 행동은 배우지 말라 하세요"였다. 농담 비슷하게 상황을 모면하고 나서 내 모습을 보니 참 우습고 실망스럽게 보였다. 내 모습을 누군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의 행동반경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감출 것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도자로 존경받고 살기가 쉽지 않다. 동네나 사회에서는 좋은 것만 보여주며 살 수 있지만 가깝게 사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는 정말 어렵다. 가정에선 아내와 자녀에게 존경받기가 어렵고, 교회에선 가장 가까운 부교역자와 당회원들에게 존경받기가 어렵다. 가까운 곳에서 늘 나를 보고 있고, 나의 행동과 생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사방이 보이는 유리관 속에 서 있는 인형과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교인도 알고 세상도 알고 있는 뻔한 일들을 생각 없이 행동해선 안 된다. 교회의 정직성과 정체성이 흔들려선 안 된다. 교회의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비난의 표적과 비호감의 냉소주의를 만난다.
세상은 교회와 지도자에게 높은 도덕성과 윤리를 요구한다. 그래서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회복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부도덕성에 휘말리면 이단과 사이비에게 침투할 틈새를 제공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보이는 세상이다. 꼼수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신다. 멋지고 화려한 설교나 간증, 기적과 체험도 중요 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삶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지금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하다.
이제 109회 총회 부총회장을 뽑는 일은 우리에게 또 한 번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선거가 과열되거나 불필요한 경쟁으로 우리의 민낯을 보여선 안 된다. 세상의 변화에 앞서가며 세상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파급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가 뽑아야 할 지도자는 인격적인 결함이 있어선 안 된다. 어떤 사안이든 성경적 가치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보편성과 일관성 그리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건강함이 있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 지도자는 절대 세워선 안 된다. 총회를 놀이터로 알고 인기 영합주의나 성과주의로 일하는 사람은 예측이 불가능한 퍼포먼스로 자신의 정체를 언젠가는 드러낸다. 언론에 자기 얼굴 내기를 좋아하고 성과를 대내외에 알리길 즐긴다. 그리고 속 빈 강정처럼 일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이런 지도자를 갖고 있는 단체나 조직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백성은 지도자의 수준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바뀔 수 있다. 우리는 각기 개체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지체들을 위한 마디와 힘줄의 공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다. 그래서 문제는 지도자다.
남택률 목사 / 광주유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