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카드를 손에 꼭 쥔 병사

[ 미션이상무! ]

김은경 목사
2024년 09월 04일(수) 09:43
지긋지긋했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며 여러 불안과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군은 국토방위를 위해 존재하기에 집단생활을 하는 군 특성상 군 내에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각별히 힘쓴다. 병력 손실은 곧 전투력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4년 전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이던 때 종교 행사뿐 아니라 인성교육, 집단교육 등이 전면 금지된 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필자는 2020년 6월 전역하고, 2021년 3월에 재입대했다. 재입대하기 전 짧은 몇 달간 군인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는데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19가 심각 단계에 이르러 모든 종교 행사가 금지되고, 민간인은 군대 내에 출입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부대에서 종교 행사가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수요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참 오랜만에 장병들과 함께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기에 무척이나 감격스럽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 대면으로 종교 행사했다가 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어쩌지, 비대면으로 하는 것이 나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러다 예배가 끝났고 장병들이 한 명 한 명 생활관으로 복귀하는데 빨간 생활복을 입은 해병대 병사 한 명이 남아서 계속 기도를 하고 있었다(그 교회는 교육기관이라 육, 해, 공, 해병대 모든 병사가 있다). 몇 분이 지나자 그 병사가 예배당에서 나왔다. 그 병사는 누가 보아도 신병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어 어리둥절해하는 눈빛과 몸짓,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 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져 있는 모습이 신병임을 확신하게 했다. 그 병사에게 질문했다. "많이 힘들죠?" 그 병사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면서 내게 말했다. "목사님, 교회에 너무 오고 싶었습니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신년에 교회에서 많이들 나눠주는 말씀 카드였다. 대부분 1년 동안 사용하기 때문에 물에 젖거나 구부려지지 않는 소재로 무척이나 빳빳하다. 그 병사가 꺼낸 말씀 카드도 분명 동일한 소재였을텐데 그의 말씀 카드는 몇 년은 족히 쥐고 있던 것처럼 낡고 구겨져 있었다. 입대하면서부터 그 말씀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단다. 전투복을 입을 때도, 생활복을 입을 때도 항상 그 말씀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서 두려울 때면, 힘들고 지칠 때면 그 말씀 카드를 꺼내 보고, 손에 꼭 쥐어가며 그렇게 군복무를 했던 것이다.

예배당 밖에는 울 데가 없다던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교회에 가면 군대에서 힘들었던 것들을 쏟아낼 텐데 교회에 올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말씀 카드를 움켜쥐며 붙잡았기에 그렇게 낡고 구겨졌다.

그 신병의 마음을 왜 모르랴. 그래서 그 병사를 위해 기도해 주고 생활관으로 보냈다. 그 병사를 보며 '비대면으로 해야 하나' 했던 생각이 사라졌다. 예배를 너무나도 사모하며 교회에 오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있을 때 예배자로서 더 최선을 다해 예배를 준비하고 장병들과 함께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국가의 신성한 부름에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지금도 전후방 각지에 흩어져 밤낮으로 국가를 수호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 군인은 강한 군사지만 누구나 각자의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지금도 말씀 카드를 손에 꼭 쥐고 있는 병사들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 대한민국 장병들을 위해 지금 이 시간 잠깐이라도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김은경 목사 / 8여단 군종장교 대위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