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기

[ 목양칼럼 ]

김명석 목사
2024년 07월 17일(수) 08:24
필자가 얼마 전에 착각하여 크게 당황한 적이 있었다. 총회 노회장단 기도회가 서울에서 예정되어 있었는데, 날짜를 착각해서 한 주간 먼저 올라간 것이다. 구례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휴게소에서 쉬며 날짜를 착각한 걸 인지하고 당황하였다. 다시 구례로 돌아갈 수도 없기에 할 수 없이 서울까지 가서 예매한 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필자는 서울로 가던 버스 안에서 계속하여 기도하였다. 분명히 필자가 착각하여 실수로 이렇게 되었지만, "하나님! 이런 가운데서도 깨닫는 은혜가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서울에 도착해 전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가는데 중간 환승역에서 교통문화협의회가 붙여놓은 '사랑의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기다려 주기'였다. 그 글을 읽는 순간 한 주간 착각하여 서울로 가는 당황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목양칼럼'을 써야겠다는 확신이 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승강장에서 열차가 지연된다는 방송을 듣게 되면 초조한 마음과 함께 피곤함이 밀려온다. 생각보다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참지 못해 어긋나는 관계도 있다. 자녀에게 부모의 기다림은 필수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그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기다림이 답일 때가 많다" 는 내용의 편지를 봤다.

필자의 교회에서는 장애인복지관을 운영하며 장애인들을 섬기고 있다. 얼마 전 직원들의 조직개편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장애인 사역의 필수는 '사랑으로 기다려 주는 것'이라고 권면했다. 밥 먹고, 이동하고, 발달장애인을 교육하는 것 어느 하나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장애인들에게 기다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늘 느낀다. 그런가 하면 목회 현장은 어떤가? 우리는 한 영혼이 주님을 믿고 변화되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쓰임 받기를 열망하는 조급함 때문에 낙심할 때가 많다. 교회가 빨리 부흥되기를 열망함이 지나치다 보니 목회가 행복하지 못하고 어떤 경우는 부흥이 안 된 것을 두고 목회자가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분명히 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신다(고전3:6, 7)"고 말씀하신 걸 알면서도 필자 자신부터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함이 앞선다.

20세기 초 일본에서 갓 목사 안수를 받은 나가노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사방 100km에 교회와 신자가 없는 곳에 개척하고자 북쪽의 가나사와 지방에 가서 가족과 함께 천막 교회를 시작했다. 1년이 가도 교인 한 명을 전도할 수가 없는 가운데 갈등도 많았지만, 무려 5년을 그곳에서 기도하며 교회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예배에 드디어 젊은 청년이 들어오자 나가노 목사는 열정을 다하여 말씀을 전하고 함께 저녁밥을 먹게 되었다. 식사 중 청년이 각혈하자 정성껏 닦아주었다. 이 청년은 신학교를 다니다 폐병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교회도 못 나가고 방황하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다. 세상을 비관하던 청년은 나가노 목사의 소문을 듣고 그곳에 가서 함께 생활하며 주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고 다시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다. 그는 평생 나가노 목사의 가르침을 따라 빈민목회를 하였는데 그가 유명한 빈민의 아버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이다. 나가노 목사는 평생 도요히코 청년 한 명을 목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기다림과 인내의 목회 열매는 세상에 지금도 큰 울림을 주는 그리스도인을 배출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얼마나 우리를 기다려 주셨고, 기다리고 계시는지 모른다. 필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종의 길을 걷는지가 40여 년이 되었는데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이었고 나를 향한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주님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필자를 기다리실지 모른다. 사랑은 여러 가지이나 "사랑은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는 말씀처럼, 결국 기다려 주는 것이다.



김명석 목사 / 구례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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