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경시, '스펙'은 우대하는 사회

수능만점자 일류대 의대생의 살인이 남긴 씁쓸한 단상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4년 05월 12일(일) 22:29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육의 문제점을 이미지로 그려냈다.
2018년 수능만점자이며 일류대 의대생인 A씨가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사회적 규칙이나 윤리적인 문제가 아닌 살해 용의자의 '화려한 스펙'에 집중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생명 경시, 물질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성의 목소리가 사회 일각에서 퍼지고 있다.

지난 6일 A씨가 서울 강남의 한 건물 옥상에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수차례 흉기로 휘둘러 살해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직후 '수능만점자'이며 'Y대'재학 중인 '의대생'이라는 남다른 신상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빠르게 퍼졌고, 급기야 '의대생 수능 100점 받은 만점자의 공부법'까지 화제가 됐다.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 범죄 등 심각한 사회문제보다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스펙에 가려져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우리 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가정과 학교역할 붕괴'가 불러온 비극적인 현실로 분석했다.

장신대 신형섭 교수(기독교교육)는 "성적과 입시 위주의 교육에만 매몰돼 진정한 삶의 가치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가는 여정에서 '가치교육'이 생략됐다"면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가치회복의 기회 없이 돈과 부만 추구하며 과도한 경쟁으로만 자녀들을 몰고 간다면 이러한 일탈이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투명성기구가 최근 발표한 한국 청소년 청렴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 입학이나 취업을 알선해 올 경우' 54%의 청소년이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했고, '부자가 되는 것과 정직하게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는 40.1%의 청소년이 '부자'라고 응답해 성인 31%보다 높았다. 과정이 어떻든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면 된다'는 물질지상주의와 성공추구에 매몰된 청소년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결과다.

유바디교육목회연구소 박상진 소장은 "성품과 인격, 영성까지 포함해 건강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세워나가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데,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마치 교육의 완성인 것처럼 왜곡됐다"면서 "성적을 최우선 가치로 둔 교육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사회와 부모, 학교는 처절하게 반성하고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또 "교회가 신앙과는 별개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식의 세속적 가치에서 벗어나 소명의 관점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일꾼으로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교회와 크리스찬 부모들이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다양한 소질과 능력을 격려하며 다음세대 교육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형섭 교수는 교회와 가정이 '직업 교육, 진로 교육, 사명 교육, 소명 교육, 사명 교육'의 여정을 통해 전인적인 사람을 길러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직업 교육은 진로 교육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진로 교육은 사명 교육, 사명 교육은 소명 교육, 소명 교육은 결국 내가 어떤 삶으로 부름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신앙 교육이 전제가 된다"는 신 교수는 "이러한 여정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드셨고 왜 부르셨는지 고민하면서 내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하고 그 가치에 근거해 행동하며 옳고 바람직한 가치를 구현해 내는 것"이라면서 "학교가 할 수 없다면 신앙공동체가 세상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을 만한 가치를 제시하고 부모들도 같은 방향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현장 목회자들은 충격적인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세속적 가치관 안에 크리스찬들이 함몰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한국교회가 다음세대를 영적으로 무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에서 학구열이 가장 높은 서울의 중심에 있는 반포교회 강윤호 목사는 세속의 가치관이 혼재된 기복 신앙이 한국교회 안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부림치는 다음세대,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보기 전 먼저 천국에 목적을 가진 그리스도인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목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회와 가정의 본질적인 가치관을 세우고,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을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녀들이 세상 속에서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하나님을 향한 바른 목적을 갖도록 양육해야 한다"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이 가진 달란트와 은사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삶의 예배자가 되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선 특별히 "목회자들이 더욱 바로서 다음세대, 그리고 사회의 진정한 약자들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교회는 편협함을 버리고, 우리 사회 약자의 약함뿐만 아니라 강자들의 약함까지도 치유하는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서울 목동에 위치한 목양의교회 김성수 목사는 의대생 살인 사건이 사회와 교회에 암시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김 목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이치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듯이 교회는 말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기본 본질을 우리 자녀들이 지닐 삶의 소중한 가치로 심어주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교회는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크리스찬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고 이웃을 섬기며, 이를 위해 세상에서는 손해 보는 가난한 사람으로 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가치를 진정으로 회복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신중고등학교 교목 이석영 목사는 이번 사건을 한 가해자만의 문제로 진단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문화, 교육 등 전반의 문제로 분석했다. 그는 "마음 아프게도 일류대 의대생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도 그 길을 제시하지 못했고, 학원에서는 대학 가는 방법만 배웠을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서도 해부학, 그리고 질병을 치료하는 법만 배웠지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지혜는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목사는 "이 사건, 이 사람의 문제는 이 시대 속 바벨탑을 쌓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 같은 문제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영적지혜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교회학교와 신앙교육의 변화를 더욱 도모하기 위한 방향과 방법을 늘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최은숙 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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