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살린다

[ 가정예배 ] 2024년 4월 18일 드리는 가정예배

탁신철 목사
2024년 04월 18일(목) 00:10

탁신철 목사

▶본문 : 마가복음 2장 13~15절

▶찬송 : 324장



오늘 본문에는 한 문장의 말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이 나온다. 세관에 앉은 레위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 이 말은 레위의 삶을 바꾸었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라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주님의 길 되심을 강조한다. 주님은 바닷가로 가셨다(13절). 많은 무리가 따랐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아니었다. 잠시 함께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레위는 그들과 달랐다. 진정으로 따르는 자가 되었다. 원문에서는 '일어났다 그리고 따랐다'고 기록한다. 표면적으로는 세리의 일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도 쉽지 않은 결단이다. 세관 자리는 부와 명예가 보장된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욕망대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의 뜻이다. 즉, 마음의 주인을 바꾸었다는 표현이다. '내가'에서 '주님이'라는 주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살아갈 것이다. 내 길이 아니라, 주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모든 것을 버렸다(눅5:28)'고 부언 설명되어 있다. 14~15절에 '따른다'는 단어가 3번이나 반복되었다. 강조를 의미한다. 레위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에 그렇게 응답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의 약함이다. 강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이 아니다. 약해도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 주님이 강함으로 도우시며 함께 하기 때문이다(고후12:9). 그 강함으로 인도하신다. 그래서 오히려 더 연약함을 깨닫고 더 의지하면 더 강하게 된다. 로마서에는 우리의 연약함의 결정적인 모습이 나온다.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롬8:26)" 즉, 기도할 바도 모르는 연약함이다. 좌우를 분별 못하는 어린아이의 연약함이란 의미다. 본문의 병자와 죄인이 레위이다. 그 연약함을 인정했던 레위라 주님을 더 의지했다. 그래서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었다.

레위의 집에서 레위에 의한, 이 식사는 의미가 깊다. 주님은 거의 목숨을 걸고 이들과 식사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전 토라인 미쉬나에 의하면 유대 멸망 후, 성전이 없어졌던 시기에는 식탁이 누가 거룩한지, 거룩하지 않은지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다.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가 절기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평소 무엇을 먹는지, 누구와 같이 먹는지에 따라서 경건한 자, 경건하지 못한 자인지 판단했다. 예수님에게 바알세불이 지폈다는 모함(막3:22)도 이런 죄인과의 식탁교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식탁의 교제는 주님 사역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본문 15~16절에 '잡수시는 것'을 4번에 걸쳐 기록하여 강조한다. 성경에 있어서 천국은 궁극적으로 잔치, 식탁 교제에 참여하는 것(마25:21)이다. 영생의 특권은 바로 주님과의 식탁 교제리라.

이제 우리 차례다. '나를 따르라'. 주님 말씀하셨다. 도피할 수 없다. 이 말이 우리를 살리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진정으로 결단하며 따를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길만이 생명임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탁신철 목사/중부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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