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편지 ]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편(9)
최남영 선교사
2024년 03월 27일(수)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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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두고 후임선교사를 요청하여 가족들이 막상 도착했는데, 사사건건 간섭하니,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 등을 돌린다. 그래도 그 정도면 참을 만한 정도다. 교단 세력 끈을 이용해 관계자까지 힘을 뻗쳐 기어코 탈퇴까지 당한 선교사도 있다. 내 영역 안에서 어디 감히 내 말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후임이라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한번도 아니고 몇 번씩 반복돼도 후임 역할이 불가능하니, 주변 동료선교사들까지 분위기가 불편하다. 언젠가 전체 선교사 모임에서 그 선배와 후임 간 험한 욕설이 난무하고, 금방 주먹이 날아갈 뻔한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한 도시에 '호형호제' 하다가 어느날 동료가 구입한 땅이 내 선교센터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말다툼이 오가고, 십 수년이 지나도록 등 돌리고 살아간다. 인구 밀집도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사역현장에서 보아온 부끄러운 갈등 사례들이다.
부정적 요소만 있는 게 아니다. 멕시코의 가톨릭 교회는 중남미에서도 힘을 가진 나라 중 하나다. 최근 중남미 쪽 성령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며 개신교 약진이 매우 활발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교회의 경계심이 한층 강해졌다. 정부 종교청이 나셨고, 절차, 허가없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개신교회를 주목했다. 현지교회를 세워 온 선교사들도 위기 의식이 발동했다. 정부 대응차원에서 함께 협력해야만 했다. 몇몇 뜻이 통하는 선교사들이 교파 초월 종교법인설립을 추진했고, 원하는 선교사는 누구나 가입시켰다. '한멕 종교법인'이라는 큰 우산 아래, 모든 선교사가 세운 교회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됐다. 초교파 선교사 연합모임체의 아름다운 선교지 사례이다.
외국에 살면 가장 약한 부분이 법적인 부분이다. 사역을 위한 언어소통은 가능하지만, 법을 따지는 경우가 생기면 쉽지 않다. 선교사 생활 십여 년 만에 첫 홀로서기 준비로 교회 땅을 찾아 나섰다. 개별거래 위험성을 고려해 큰 부동산회사(Sentury21)를 택해 거래를 시작했다. 몇 군데에서 성사를 못하고, 정말 어렵게 찾은 곳은 마치 숲속의 동화에 나오는 장소처럼 큰 나무로 가득했다. 삭막한 티후아나 땅에 이런 장소가 있다니. 첫눈에 반해버린 땅이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함께 답사차 찾아갔다. 모두가 환영 일색이었다. 그러나 땅값 마련이 쉽지 않았다. 계약금 지불과 신용보증을 조건으로 계약을 완료했다. 역시 큰 회사의 힘이 컸다. 그 땅을 보고 또 봐도 좋을 만큼 얼마나 가슴 벅차 올랐던가.
그런데,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찾아왔고, 금융 대란이 온 세계를 강타했다. 우리의 크레딧 조건도 취소되고, 은행마다 두드렸지만 불가능했다. 계약 원천 취소 위기 속에 계약금까지 날릴 상황이었다. 현찰지불 계약서로 바꾸고, 그날부터 돈을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동료선교사들이 사정을 알고, 기꺼이 협조하던 귀한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최선을 다했지만, 다 갚을 여력이 부족했다. 구입한 땅 중 반을 갈라서 주인에게 돌려 주고, 반만 차지했다. 이러한 일이 화근이 됐다. 갈등은 정말 깊었다. 원치 않은 재판으로 겨우 땅을 지켜냈지만, 선교사역의 최대 실수이고 큰 아픔이었다.
위기는 기회라던가. 땅 문제로 심신이 소진된 채 낙심해 있는데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근처 한국회사가 사정상 중국으로 이전하게 됐고, 회사 내 창고 벽재료 판넬 일체를 판매한다는 거였다. 단돈 1불도 없이 문의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다행히 지인을 통해 우리 교회 사정이 전달됐고, 100% 기증 받는 쾌거를 이뤘다. 임시 예배당 막사를 철거하고, 예배당 신축이 급히 진행됐다. 반 쪽짜리 땅이지만 예배당 건물이 완성됐다. 첫 예배에 얼마나 감동의 눈물이 흐르던지….
동화처럼 첫 눈에 반해버린 이 땅, 긴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채 여전히 반쪽짜리 정복의 땅이지만, 멀리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온전한 회복의 그날까지 걸어 갈 수 있기를…. 주여 도우소서!!
최남영 선교사
총회 파송 멕시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