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복음화를 위한 헌신

[ Y칼럼 ]

김장철 청년
2024년 03월 20일(수) 03:53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후, 곧바로 교육전문대학원에 진학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또래보다 늦은 29살에 군 복무를 시작하였다. 늦은 나이에 입대해 10살 이상 차이 나는 동생들과 생활하는 건 엄청 힘든 일이라며 주변 친구들이 많이 걱정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카투사(KATUSA)로 군 생활을 보냈다. 카투사가 많이 배치되는 곳은 부대 규모가 가장 큰 평택이지만, 나는 대구로 배정받아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낯선 땅에서 1년 7개월을 생활하였다.

대구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며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바로 대구지역 주한미군 시니어 카투사(선임병장)로 근무하며 후임 카투사 50명의 전반적인 생활을 돌보고, 한국 간부들과 미군 간부들의 소통을 돕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후임들은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후임 카투사들이 미군 부대에 잘 적응하도록 어려운 업무나 고민에 대해 수시로 상담했고, 후임들이 힘들어하는 사람 관계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예수님의 마음으로 중보기도했다. 후임들과의 신뢰 관계가 지속되다 보니 10살 가까이 차이 나는 동생들과도 깊이 교제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됐고, 군 제대한 지 올해로 4년째이지만 여전히 서로 연락하며 모임에 힘쓰고 있다.

또한 근무하며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바로 대구의 기독교 역사였다. 평소 와보지 못했던 매력 있는 도시, 대구에 대해 많이 알고 싶었고 대구 수성못, 앞산, 월광수변공원, 하중도, 팔공산, 달성공원 등 친구들과 지역 명소를 찾아 다니며 경험했다. 특히 대구 시내를 여행하던 중 알게 된 대구제일교회 대구기독교역사관을 통해 대구·경북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셨던 선교사님들과 성도님들의 삶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대구제일교회는 미국 선교사 베어드 목사가 경상도 북부지역의 선교활동을 위해 1896년 대구읍성 안 터에 있던 주택 8채를 구매하여 대구선교기지로 사용했고, 이를 통해 대구·경북지역 최초로 세운 개신교 교회이다. 초기에는 대구 최초의 의학병원인 제중원(동산의료원의 전신)을 세워 서양 의술을 소개했고,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많은 인재를 양성했다.

대구제일교회 대구기독교역사관에 전시된 물품 중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실제 사용하였던 낡은 성경책과 찬송가,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오르간을 보며 그 시대를 보내셨던 선교사님과 성도님들을 떠올렸다. 지금 이 시대에 좋은 환경에서 교회를 다니며 믿음 생활을 하는 나는 결국 이러한 믿음의 선배님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대구·경북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곳곳을 찾아 다니며 복음을 전한 믿음의 조상들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한 영혼을 위해 곳곳을 찾아 헤매었던 목자의 마음이 지금도 대구·경북에 뿌리 내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많은 열매가 맺히길 기도한다.



김장철 청년 /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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