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사회, 다음세대는 지지공간이 필요하다

[ 주간논단 ]

조영미 박사
2024년 02월 20일(화) 08:00
지난 2023년 청소년(9세 이상 24세 미만) 인구는 791만 3000명으로 총인구의 15.3%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980년까지만 하더라도 청소년 인구는 1405만 5000명을 기록하며 전체 인구의 37%를 차지했지만,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결국 700만 명대까지 떨어졌다. 인구학자들은 청소년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2060년에는 약 450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는 수치다.

연령을 청년으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현재 19세 이상 34세 이하의 청년세대는 1000만 명을 간신히 넘고 있는데 2050년 예상치는 약 500만 명으로 청년 인구 역시 절반 이하로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구구조의 변동으로 청소년과 청년세대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어찌 보면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게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노멀 시대와 첨단기술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사회 주도성 또한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회적 중요성과는 달리 우리 사회 청소년·청년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특히 최근 정서적 불안과 우울을 겪는 청소년과 청년이 급증하고 있다. 2022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코로나19 전인 2019년 대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비중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대는 20대(+51%)와 10대(+46.9%)다. 또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의 발표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우울감 경험률은 28.7%로 10명 중 3명은 최근 1년 동안 2주간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안과 우울의 심화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망자는 2022년 기준 연간 1만 2906명으로, 1일 평균 35.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전체 자살률은 25.2명으로 OECD 평균인 10.7명을 한참 상회한다. 이를 반영하듯 10대와 20대의 사망원인 1위는 단연 자살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은 우리 사회의 불건강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0대와 20대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로는 가족이나 친구, 성격, 학교 등 여러 사회문화적·구조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여기서 특히 가정환경의 격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가정환경의 격차가 곧 교육의 격차로 나타나고 이것이 성장의 격차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학습과 자원, 기회의 결핍은 곧 청소년과 청년에게 사회적 결핍과 '격차 세대'라는 꼬리표를 붙여준다. 학교의 사회화 기능은 줄어들었고 학교 현장에서도 협동보다는 경쟁이 우선한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진학해도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기는 매우 어렵다. 세계화된 경제환경과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구조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감소하고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각종 차별 의식과 서열주의는 정치이념과 종교, 인종, 세대, 지역 남녀 사이의 차별과 혐오로 나타난다. 디지털 개인주의는 공동체성 해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른바 불안 사회,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각자도생하느라 쉴 틈이 없다. 어디로 달려가는지 모르지만 모두 바삐 앞서 뛰는 사람들을 앞지르려 목적 없이 뛰어가고만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실로 복합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청소년과 청년에게 일상의 불안을 상승시킨다. 이를 해소할 사회적 장치나 창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격차와 결핍, 경쟁과 차별을 넘어선 공동체적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교계는 청소년과 청년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걱정한다. 기독교 신앙의 확장성이 막혀있다. 교회는 일상의 모든 구성원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다. 또한 교회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회적 신뢰와 같은 사회 자본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에 가치를 두고 있다. 더 나아가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웃과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 왔다.

오늘날 교회는 청소년과 청년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청소년과 청년은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며 삶의 가치를 깨닫고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청소년과 청년의 목소리를 온전히 듣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교회 내에서 자기효능감과 존중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들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함께해야 한다. 교회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정서적, 사회적으로 안전한 지지 공간인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정의와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조영미 박사/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CCA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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