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 가운데 있을 지라도

[ 미션이상무! ]

최태양 목사
2024년 02월 21일(수) 08:49
순항훈련의 마지막 기항지인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던 중 만난 태풍의 기세는 매우 거셌다.
2014년 12월, 태풍이 필리핀에 상륙하는 바람에 필리핀에서의 기항이 취소되고, 순항훈련 전단은 마지막 기항지인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게 되었다. 태풍의 기세는 매우 거셌다. 가급적 태풍을 피해 항해를 하였지만, 난생 처음 '황천'을 맞이하게 되었다. 황천은 비바람의 세기를 나타내는 해군의 용어 중 하나다.

민간 선박들은 기상 특보가 발령되면 해당 구역을 우회하거나 항구로 피신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해를 방어하는 군의 특성상 악천후에도 기상 상황에 따라 항해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황천 상황에서 중요한 부분은 파고이다. 당시 블라디보스톡을 향할 때 바람은 시속 130km, 파고는 7~10m, 기온은 영하 18도 등으로 그야말로 악천후 상태였다.

그러나 우리 함정은 이 파도에 굴하지 않고 황천항해를 시작하였다. 황천이 발령되자 함정 내에서는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물품을 밧줄로 꽁꽁 묶었고, 항해 및 작전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제외하고 모든 인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침실에서 대기하였다. 거센 파도에 부딪힐 때마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잠을 청할 때에도 그 파열음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잠이 들기 어려웠고, 요동이 심해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기도 버거웠다. 심지어 멀미로 인해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인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정은 이 넓은 바다에서 파도와 바람에 맞서야만 했다. 나는 정신을 차린 후 함수로 올라갔다. 함수에서 보는 파도는 그야말로 위협적이었다. 파도는 함정보다 훨씬 높이 치솟아 우리를 삼킬 기세로 달려들었다. 함정은 그런 파도를 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때 근무 중인 승조원들의 어깨 위에 일일이 손을 대고 기도하며 격려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 27장 말씀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승조원들은 "아멘"을 연신 고백하였다. 나는 이 고백이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고백이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하였다.

함정은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실패했다는 러시아 입성에 성공하였다. 다만 세찬 파도를 넘느라 함정은 꽁꽁 얼어붙었고, 러시아 언론은 '유령선이 도착했다'고 연신 기사를 내보냈다. 모든 승조원들과 생도들은 이 난관을 극복해냈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 나는 이 자부심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군선교는 이러한 현장의 경험을 통해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태양 목사 / 해군본부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