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 미션이상무! ]

김택조 목사
2023년 12월 27일(수) 15:37
기초군사훈련에 입교한 기훈생도 환영예배.
전방사단에서 참모를 끝낸 후 갈 곳이 없었다. 육본에서는 사단 참모 중에 당신이 기수가 제일 높으니 원하는 대로 가라고 했다. 현실은 다시 사단참모를 하라는 것이었다. 2년 뒤 중령진급에 들어가는데 군단급 부대에 자리가 없었다. 고심하며 기도하던 어느 날 육본군종실에서 연락이 왔다. 육군사관학교 육사교회에 중령 참모직위가 법사가 되면서 목사 소령 자리가 비었으니 가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직위가 바뀌는 일이 흔치 않아서 의아했다. 연합사 근무 시절 국군중앙교회 신우회 지도목사를 했는데, 아침 1부 예배로 드렸던 신우회 예배에 참석하셨던 연합사 부사령관님의 추천이 있었다. 본인은 그렇게 재미있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신우들이 설교에 빵 터지는 것을 보고는 "청년에게 들려지는" 설교를 하던 필자를 떠올리셨다고 한다.

생도사역은 졸업예배로 시작했지만 기초군사훈련에 입교한 기훈생도 사역이 실질적인 첫 단추였다. 종교를 갖지 못한 생도들은 매주 각 종교의 종교행사를 순회했다. 이렇게 종교행사를 순례한 생도들은 기초군사훈련이 끝나면 자신의 종교를 선택했다. 주일예배에 오는 생도들에게 주는 간식은 초코파이 하나에 요구르트 한 병. 간식으로 승부하지 않고 오직 '설교, 강론, 설법'으로만 승부하는 '진검승부'가 펼쳐졌다. 전임자는 유명 강사를 초청해서 그 시간을 채웠다고 한다. '쉬운 길'이 보였다. 그 때 선배목사님께서 친히 전화하시고는, "김목사, 목사가 설교로 승부해야지.." 안일한 '외부강사 초청'의 길보다 '험난한(?!) 설교자의 길'을 택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용사도 아니고 간부도 아닌' 생도는 처음 접하는 청중이었다. 기초군사훈련이 다가올수록 부담은 높아만 갔다. 지금껏 중령 목사님의 '중량 있는(?!)' 설교를 들어오던 생도교사들은 강원도 전방사단에서 온 소령 목사가 미덥지 만은 않은 눈치였다. 오자마자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았다. 첫 기훈생도 설교를 앞둔 토요일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본당 강단에만 불을 켜고는 2시까지 설교 리허설을 했다. 본 설교 때보다 설교 리허설 때 더 간절하고 절박했던 것 같다. 이윽고 긴장과 열정의 기초군사훈련 '종교행사 진검승부'가 끝났다. 감사하게도 선방 한 것 같았다. 환영예배에 많은 기훈생도들이 왔으니 말이다.

바쁘게 한 학기가 지나갔다. 수요예배 때마다 생도들은 성전을 가득 메웠다. 수요일 오후 고된 전투체육을 끝내고 저녁 식사 후 교회 온 생도들은 피곤에 쩔어(!) 있었다. '짧고 굵은' 메시지로 '임팩트있게' 설교하고 생도들을 보내는 전략을 펼쳤다. 졸음이 몰려 올 즈음에 설교를 끝냈더니, 생도 교사들은 생도들이 졸지 않는다고 놀라워했다. 생도들도 지루하던 설교가 잠이 슬쩍 찾아올 무렵 끝나고 맛난 간식 먹고 복귀하니 생도들의 입소문을 탔다.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육사를 떠난 후에 학교장이 바뀌고는 수요종교행사가 자율로 바뀌었고 생도들의 예배 참석은 급감했다고 한다.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학기수업이 끝나고 생도들은 모두 하계군사훈련을 떠나 교내가 조용해졌다. 수요예배마다 생도들의 열기로 가득했던 교회는 적막하기만 했다. 주위에서 육사교회 담임목사는 이 때 쉬는 거라고 말했지만 왠지 허전했다. 마침 지난 해 졸업한 생도들이 상무대에서 기초군사반 교육을 끝내고 전방으로 배치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졸업한 생도들이 야전교회 출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아쉬움도 들은 터라, 졸업예배에 참석한 생도들의 부대배치가 담긴 명단을 작성했다. 졸업생도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선언하고 떠나는 주일 밤, 인제 양구지역에 배치된 졸업생도들에게 육사교회 담임목사인데 만나자고 문자했다. 12명에게 보낸 문자에 한명도 답하지 않았다. 막막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한 졸업생도에게 답문이 왔다. 막막하던 '졸업생도 방문 사역'의 효시가 날라 온 것이다. 이후에는 요령이 생겨 사단사령부에 출장 왔는데 한 번 보자는 전략으로 나갔더니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온다고 하니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졸업생도들을 만나서 격려하며 기도해 주고는 소대원들 햄버거 쏴주고 중대장 선물용 롤케이크까지 안겨주며 군 교회에 잘 다닐 것을 신신당부했다. 아마 그해 여름 '엄마의 손길이 담긴 그 햄버거'의 매상에 조금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만난 졸업생도마다 인증샷을 찍어 출력해서 사무장님이 교회 벽면에 붙여놓은 한반도 지도에 하나씩 붙여 나갔다. 지칠 줄도 모른 대장정이 끝나니 육사교회 벽면에 붙은 지도에는 그간 만난 졸업생도들의 얼굴로 가득 덮였다. 두 번째 대장정이 끝난 이듬해 가을, 중령으로 진급했다. 생도사역을 하며 정말 마음이 잘 맞는 장로님도 만나 힘찬 동역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분이셨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던 전방 부대의 그 '험난한 길들'을 오직 구글지도에 의존하며 다닌 기억이 생생하다. 쉬고 싶을 때 쉬고, 편안하고 쉬운 '안일한' 길을 택했다면 주께서도 사람도 기뻐하지 않았으리라. 그 막연한 길에서 주께서는 새로운 만남의 복을 허락해 주셨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다. 할렐루야!

김택조 목사 / 총회 군종목사단장·사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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