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은퇴하고 어떻게 살까?

[ 주간논단 ]

정 우 목사
2023년 11월 28일(화) 08:00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남녀의 경우 서양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양의 젊은이들은 서로 사랑하면 언제 결혼하고, 집은 어디에 정하고, 또 수입과 지출은 각각 어떻게 하고, 다 계획을 세운 후에 부모님에게 가서 우리 결혼하겠다고 얘기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은 서로 사랑하면 덜커덕 아이부터 갖고 부모님에게 가서 우리 임신했으니 결혼하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이 둘의 차이는 계획의 유무이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여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런 것들 없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은퇴의 경우도 그렇다. 장로의 은퇴에 대해서는 장로가 아니기에 잘 모른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목사의 경우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아마 대부분의 목사도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 없이 은퇴하는 것 같다. 물론 목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목양의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그러다가 그때를 맞이한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1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년이다. 목사가 70에 은퇴한다면 개인차가 있지만 14년 정도를 더 살게 된다. 그렇다면 14년 동안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필자의 숙부님이 70에 은퇴하셨다. 몇 년 후에 책을 내셨는데, 거기에 '놀고, 먹고, 자고'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은퇴 후 3개월은 좋았다. 목회라는 멍에가 벗겨지니 시원했다. 날마다 이곳저곳 다니며 먹고 놀고 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마음이 답답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일자리 하나 주세요. 놀고, 먹고, 자니 싫습니다."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하나님, 시장에 가서 장사나 할까요?" "네가 장사의 장 자도 모르는데 무슨 장사냐?" 하나님이 그러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돌볼까요?" "네가 눈이 어두운데 누구를 돌볼 수 있겠느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절망감이 몰려왔다. "아, 나는 쓸데없는 존재인 모양이다. 폐품도 재활용한다던데 그렇다면 나는 쓰레기인가?"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이런 소리가 들렸다. "전도하라, 전도하라." 주님의 음성이었다. 숙부님은 그렇게 해서 20년 넘게 지금까지 전도지를 제작해서 개인 전도에 매진하고 계신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누가 나에게 왜 사느냐고 물으면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전도하려고 삽니다."

은퇴를 한자로는 '숨길 은'(隱)에 '물러날 퇴'(退)로 쓴다. '물러나 숨는다'는 뜻 같다. 그런데 영어의 의미는 좀 다르다. 'Retire', '타이어를 다시 끼운다'이다. 좀 더 긍정적인 의미이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타이어를 빼내고 새로운 타이어로 교체하여 다시 달린다는 뜻이다.

은퇴하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건강이다. 신학교 졸업반 때이다. 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교단의 어른을 찾아가 말씀 듣는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물었다. "목사님, 인생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합니까?" 우리는 그분이 믿음이나 기도나 사랑을 얘기하실 줄 알았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건강이라고 하셨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분은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은퇴하면 육체적인 건강만이 아닌 정신적인 건강, 심지어 영적인 건강(영성)도 약화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 둘째, 적당한 재물이다. 잠언 30장 8~9절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셋째, 할 일이다. 두 종류의 일이 있다. 하나는 목회와 관련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일이다. 평생 주의 일 했으니 이제는 정말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이다. 사진 기술을 배워 사진을 찍어 사진첩을 만드는 일, 컴퓨터를 배워 지난날 자신의 기록을 잘 정리하는 일, 본인의 가문에 기독교가 언제, 누구에게 전해져 오늘에 이르렀는지 가문기독교전래사를 정리하는 일, 자신의 일대기를 겸손히 정리하는 일 등등.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훨씬 아름다운 노후가 될 것이다. 남은 14년? 금방 지나갈 것 같다.



정 우 목사/미암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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