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광야학교 입학 이야기

[ 목양칼럼 ]

한성호 목사
2023년 11월 29일(수) 09:59
필자는 1992년도 6월에 결혼하여 300만원 단칸방에서 월 20만원(전도사 사례금)으로 빠듯하게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하고 그 다음해 5월에 첫아들을 선물로 주셨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아이로 자라나기를 바라서 '예찬이'로 지었다.

제왕절개로 이 아이를 낳았는데 그만 퇴원한지 하루 만에 고열로 재입원하여 한 달 동안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명은 '패혈증'으로 병원의 실수로 바이러스가 감염되었던 것이었다. 의사들은 치료는 했지만 진전이 없자 필자를 조용히 불러 "앞으로 이 아이가 생존할 확률은 50%이고 살아도 50%는 장애아로 살 수밖에 없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모든 식구들이 비상기도에 들어갔고 필자는 하나님이 주신 내면의 음성을 듣고 에스더 3일 금식 후에 "예찬이는 며칠 후에 건강하게 퇴원할 것"이라고 선포했는데 그 말대로 1주일 만에 순천향대학 아동병원에서 깨끗이 치료받고 건강한 아이로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때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지금은 신학을 해서 전임전도사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다. 특별히 음악의 재능을 보이면서 음반도 벌써 5개를 냈다.

그리고 필자는 서울 꿈꾸는교회에서 5년 동안 부목사로 섬기다가 교회 40주년 기념으로 2억원의 개척자금을 받고 일산꿈꾸는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처음 개척을 하다 보니 상가 지하 100평을 얻게 되었다. 돈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3년 동안 정말 행복한 목회를 했다. 아내는 매주 30여 명 교인들의 육의 양식을 위해 주방에서 30인분 식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영적가족들과 함께 예배 후 먹는 식사는 천국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가 있었다. 큰 아들이 피아노로 반주하고, 작은아들이 드러머로 예배를 섬겨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하에 끔찍한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예배 중에 쥐 선생(?)이 나타난 것이다. 설교하는 필자는 유난히 징그러운 동물을 무서워하는 아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것을 보고 설교하는 동안 머리가 복잡했으나 다행히 잠시 소동을 끝내고 다행히 한쪽 구석으로 도망가 버렸다. 또 한 번은 장마기간에 물이 지하에 범람하여서 새벽에 아내와 함께 아들 둘을 데리고 새벽기도회를 준비하기 위해 모든 물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아파왔지만 내일 주일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을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일을 감당할 수가 있었다. 또 추운 겨울에는 교회 상가 화장실에 꽁꽁 얼어붙어서 상가번영회 회장인 필자는 직접 망치를 들고 가서 얼어붙은 얼음을 깨다가 이물질이 입속으로 들어갔는데 나중에는 짭짤한 맛이 나서 입에서 뱉어내는 해프닝도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분당 우리교회에서 우리 부부를 초청하여서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전국에서 올라오신 개척교회 목사, 사모들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그 분들은 분당 우리교회에서 매달 후원을 받고 있는 분들이었다. 위로가 많이 필요하신 분들이었다. 그 때 아내가 레크리에이션(2급 자격증)을 인도하게 되었다. 200여 명의 목사, 사모들과 함께 많이 웃고 기뻐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둘째 아들의 친구 아버지 김종철 감독이 우리교회에 출석하셔서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 분은 팔레스타인의 분쟁가운데 직접 이스라엘에 들어가셔서 영화를 제작하셨다. 어느 날 영화제작 후 첫 수입의 십일조를 드렸는데, 500만원이라는 큰 금액을 헌금해주셔서 6개월치 월세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시듯이 우리교회를 그렇게 도우셨고, 여호와이레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울러 거룩한빛광성교회에서 전도팀이 4명 오셔서 6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전도해주셔서 큰 위로와 힘과 용기가 되었다.



부산대흥교회 / 한성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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