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통일의 풍경, 사람의 왕래

[ 연중기획 ] 끝나지 않은 전쟁, 휴전에서 평화로 ⑩통일 위해 민간교류 필요하다

윤환철 사무총장
2023년 11월 14일(화) 17:26
#민의 흐름

'민간교류'라고 쓰면 정부 간 교류의 보조수단으로 느껴지는데, '사람의 왕래'는 인간 집단의 존재 자체이며, 평화·통일 영역에서도 '왜?', '무엇을 위해?', '누가?'라는 질문에 마지막 대답이라고 생각된다. 민(民)은 제도와 전략에 따라 때때로 관(官)에 앞자리를 비워주는 미덕을 베푼다. 우리 사회가 21세기 들어 불안감 없이 평화와 통일을 말하게 된 것도, 늘 막히곤 하는 당국자들의 관계를 다시 이어준 것, 없어질 뻔한 통일부를 되살린 것도 민의 역할이었다.



#손 닿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영구한 평화를 원한다면 오늘의 평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은 제 손 닿는 만큼, 오늘 할 수 있는 평화를 추구함으로 하나님과 역사 앞에 더 정직하고 충실할 수 있다. 성경은 가족, 친구, 원수에 대해 동일한 태도, 즉 '사랑'을 명하기에, 북한 사람들을 적으로 파악해도 그리스도인의 최종 입장은 정해져 있다. 사랑을 당대에 실현하기 위해 말을 건네고, 필요를 채워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화해의 감정이 커질 것이고, 반목과 대결이 가장 미련하다는 데 공감하게 될 것이다.



#장애물을 찾고, 넘고

민이 남북의 격차와 북한 주민들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한계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것의 해결도 기대할 수 있다. 분단 기간 중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려 하거나,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 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경험한 것은 주로 북한에 대한 적개심, 경멸, 비하, 무시였는데 모두가 이해를 방해하는 심리상태다. 그보다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큰 사건을 접할 때 갖는 기대가 더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다보면 절망감을 느끼기 쉽다. 오늘이 있기까지 누적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평화 역시 선한 관계의 누적을 필요로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멀고 험하지만, 희망은 그 출발점에서 발생해 동반자를 격려한다.



#마주 보던 순간들

필자의 경험으로는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먼저 당원인 관료를 만나게 된다.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간혹 무리한 요구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구호물자든, 의료활동이든, 농촌개발이든 우리의 관심사는 곤란에 처한 인민들에게 있고, 그것은 당신들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좋다. 자신들의 의무를 남쪽 인사들로부터 듣게 되면 놀랄 수도 있지만, 당시 북한의 상황에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미국의 위협이라는 긴장이 도덕적 해이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관료와 당원들은 기회주의적 행동에 빠져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일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류의 목적과 원칙을 제시하면, 비로소 당원들은 전달의 통로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평화를 위한 민의 역할

원조든 개발이든 그 목적은 무언가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변화'에 있다. 북한과 남한 그리고 상호관계가 변화하는 것이 양방향 교류의 바람직한 목표다. 북은 대외관계에 있어 문호를 개방하고 원조 물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포함한 보편적 거래 관행을 지켜야 세계의 신뢰를 얻고 많은 나라와 거래할 수 있다. 우리는 북이 처한 맥락은 물론이고, 개방을 위해서 누적돼야 할 거래의 경험과 내부적 변화까지 기꺼이 기다려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마치 등대처럼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북한의 변화는 결국 사람의 변화일 터,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통해 북한의 변화의 가능성을 목도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경험이 남쪽 사회에 인식되기 전에 부정된 것이다. '북한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고정된 생각이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이용되기도 했다. 분단 이래 최장기·최고 수준의 협업이자, 자본주의식 생산방식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한 것이 개성공단이었는데, 그것이 핵 위협에 관한 우리 정부와의 마찰로 폐쇄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충격적 경험은 아물어가던 분단이라는 상처를 다시 끄집어냈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서는 민이 그 뒷배가 돼야한다. 모두에게 같은 경험과 지식을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냉전 시기의 사고를 어나고, 잘못된 보도나 주장을 물리치는 정도의 식견과 감각은 가져야 한다. 특히 남북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바른 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평화의 풍경

민간 교류는 통일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 중 하나라기보다는 평화와 통일이 달성되는 풍경 자체라고 생각한다. 남북이 분단, 적대, 상호 파괴라는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있기에 평범해야 할 왕래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 민에게는 평화를 가져오는 과정까지 구상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이 과제가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성도는 제 몫을 다 할 뿐 섭리는 주님의 것이라 믿고 나아가야 한다.

간절히 평화를 염원하고 소망과 진리의 눈으로 그들을 대하며, 거기에 두려움 없는 사랑과 지식을 더하면, 선대가 부탁한 하나의 공동체를 감당할 능력이 생길 것으로 믿는다.



윤환철 사무총장

미래나눔재단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