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한글학교 사역 |2024. 10.03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完

땅끝편지 마지막은 필자의 아내인 김지원 선교사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김지원 선교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한글학교에서 고려인 자녀들(7~15세)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며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알마티 고려한글학교는 2012년 2월 당시 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교육원 이견호 원장의 발의로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첫 수강생은 23명이었다.…

선교 사역의 변화와 진보 |2024. 09.28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⑨

사역엔 늘 변화가 따른다. 어떤 사역은 지속성이 있고, 어떤 사역은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또 어떤 사역은 정리하고 끝내야 한다. 필자는 코로나를 경계로 21년 동안 해오던 신학교 사역을 정리하고 현재는 중앙아시아 목회자 훈련 사역에 집중하며 중앙아시아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세우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협력의 범위는 끝이 없지만,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역으…

한국음식(K-food)를 통한 무슬림 사역 |2024. 09.16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⑧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제자교회를 방문했다. 현지 목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교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놀이터 아이들도 쫓아와 인사했다. 모두 교인인 듯 보였으나 교인이 아니란다. 지역민들에게 존경받는 목사이지만 그들을 교회 안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몰랐다.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셨다. 중앙아시아 종교법에 따르면 국가에서 지정한 장소 외에서 종교 행위를…

코로나19로 더욱 확대된 목회자 훈련 사역 |2024. 09.03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⑦

학생들이 찾아오던 차별화된 신학교 사역을 2021년 6월로 정리하게 됐다. 그동안 신학교 사역에 협력하던 미국 필그림선교교회가 일방적으로 협력 중단을 선언했다. 더 이상 선교사 주도의 신학교가 아닌 현지화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37명의 재학생 중 16명이 마지막 졸업식을 가졌다. 신학교 사역을 정리하고 건물과 제반 일체를 미국 필그림선교교회로 반환했다. 백지상태로 돌아섰다. 하…

코로나로 사역 변화, 제자 사역지 방문 |2024. 08.14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⑥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필자 역시 코로나에 감염돼 생명이 위독할 때 한국 성도들의 기도로 살아날 수 있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의 찬양이 필자에게는 실제가 되어 기도의 능력을 경험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곧 필자의 고백이 됐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필자의 사역지인 카자흐스탄은 코로나19 초기 장갑차…

학생들이 찾아오는 차별화된 신학교 |2024. 07.31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⑤

장신대 목회전문대학원 박사과정(Th.D in Min)에서 선교학을 전공하면서 선교학 교수뿐 아니라 타 과목의 교수들과도 친분을 쌓아갔다. 친분은 곧 선교지를 섬기는 도구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에 차별화된 신학교를 세우고자 기도했고, 장신대에서 강의의 고수인 교수들을 초빙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8년 동안 22명의 장신대 교수가 65회(년 8명)에 걸쳐 카자흐스탄 선교지를 방…

카자흐스탄에서 신학교 사역 재개 |2024. 07.23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④

비자문제가 해결되니 사역의 길도 열렸다. 교육센터에 대한 기도 응답으로 '하늘정원 교육센터'를 개원하였다. 중앙아시아 사역자를 위한 교육·훈련 장소로 카라칼팍스탄 사역자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카라칼팍스탄은 우즈베키스탄 북서부지역의 자치공화국으로 인구의 98%가 무슬림이다. 하지만 그곳에 극소수의 기독교인들과 10여 명의 사역자들이 있었다. 하늘정원 교육센터가 감사하게도 그들을 위한 교육·훈련…

제자리를 찾는 선교 |2024. 07.16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③

좌충우돌하는 사이 2006년 10월 사역하던 신학교가 폐교를 당했다. 계속되는 테러로 인해 외국인이 운영하는 정부인가 신학교를 강제로 폐교시킨 일이 발생했다. 당시 쉼켄트 지역에 두 신학교(장로교, 순복음)가 있었는데 동시에 폐교 통보를 받았다. 두 번의 재판에서 승소했으나 검사가 판사를 바꾸는 기이한 일까지 벌이면서 결국엔 폐교시켰다. 그동안 양육한 제자 4명에게 목사안수를 주고(2007년…

현장 선교사의 부끄러운 고백, 선교의 실패들 |2024. 07.09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②

하나님께서는 필자를 청주성서신학원에서 4년 6개월 동안 전임 교무과장으로 훈련을 시키셨다. 이후 선교지에서의 신학교 사역을 위해 선교지로 보내셨다. 덕분에 선교지에서 어렵지 않게 신학교를 개교할 수 있었다.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선교지에서 시간이 거듭될수록 '하나님의 선교'를 망각할 때가 있다. 내 생각이 앞서고 욕심이 앞선다. 뭔가를 보여 주고 싶고 이루고 싶은 욕망이…

하나님과 민족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교사 |2024. 07.02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①

"나는 하나님과 민족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2000년 6월 23일 청주 서남교회 선교사 파송예배에서 충북노회원과 교인들 앞에서 각오를 피력했다. 어언 24년이 지났다. 지금도 동일한 마음으로 그런 선교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신비하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고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

캄보디아교회의 부흥을 꿈꾸며 기도하며 |2024. 06.25
[ 땅끝편지 ]    캄보디아 오태근 선교사편(完)

2016년도 11월 '주캄 전한인선교사회 총회'에서 의미 있는 결정을 통과시켰다. 곧 프놈펜 외곽에 '한인선교사 공원묘지'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동안 몇 번 이야기 됐으나 결정을 미루어서 내가 공원묘지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발의안에 먼저 동의를 하면서 결정됐다. 그 이후로 벌써 몇 사람의 동료 선교사들이 먼저 그곳에 묻혔다. 나는 초등학교시절부터 합정동, 서교동에서 자라면서 '절두산 순교성지'…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제자 |2024. 06.18
[ 땅끝편지 ]    캄보디아 오태근 선교사편(9)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주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일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예식일 것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전통 결혼식은 온 마을의 잔칫날이다. 캄보디아는 모계 중심사회이다.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를 가서 평생 장인, 장모와 처갓집 식구들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신랑은 신부의 가정에 지불할 결혼 지참금이 있어야…

돌팔매도 사랑으로 안으니 품어지더라 |2024. 06.12
[ 땅끝편지 ]    캄보디아 오태근 선교사편(8)

요즘 나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나는 행복한 선교사인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답한다. "그렇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이다." 왜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나와 함께 예수님을 '오직 주님'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캄보디아인 제자들과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을 사랑하며, 또한 그들과 함께 기쁨의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성도들에게는 최고의 …

캄보디아장로교공의회와 캄보디아장로교신학대학교 설립 |2024. 06.04
[ 땅끝편지 ]    캄보디아 오태근 선교사편(7)

2002년 11월 예장 통합측의 김병교, 오태근, 문찬식 선교사 부부와 합동측의 두 부부가 만났다. 캄보디아에 '하나의 장로교회'와 '하나의 장로교 신학교'를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한국의 장로교의 분열의 아픔을 동감하며 각자의 교단 신학교가 아닌 장로교 연합 신학교 설립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했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 땅 캄보디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앞으로 캄보디아…

청년 선교팀과 동역했던 행복한 날들 |2024. 05.28
[ 땅끝편지 ]    캄보디아 오태근 선교사편(6)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 받고 와서 아직 크메르 언어를 공부 중이던 2002년도 2월에 첫 선교팀이 방문했다. 당시 한국 교회에서 청년부의 엄청난 부흥을 이끌고 있었던 김진철 목사가 지도하던 '창동염광교회'였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나도 수유동교회 청년들과 함께 필리핀과 캄보디아로 선교 활동을 다녔는데, 이제는 내가 현지에서 청년 선교팀을 맞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2002년도에는 프놈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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