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6
강성열 교수
2021년 12월 01일(수)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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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예레미야의 고통과 탄식,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담고 있다. 이는 15~21절이 예레미야의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이중(二重) 구조로 되어 있음을 뜻한다. 15~18절이 재난과 불행에 대한 예레미야의 탄식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담고 있다면, 19~21절은 그의 탄식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곧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15절: 예언자는 15절에서 탄식과 불평의 어조로 하나님께 다섯 가지를 요청한다. 그 첫 번째는 박해와 저주에 직면(20:10)한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해 주시는 것이야말로 그의 삶을 가장 안전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두 번째로 온갖 박해에 시달리는 자신을 돌보아 주시고 보살펴 주실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기억의 대상이 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행동을 포함하는 바, 자신이 말씀의 종으로 세운 자를 돌보시고 보살펴 주심이 바로 그러한 행동에 해당한다. 예레미야가 세 번째로 요청한 것은, 자신을 박해하고 괴롭히는 자들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이다.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모진 고통과 수난을 겪은 그로서는 원수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복하심이 절실했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보복을 해주셔야 그들의 박해와 저주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자신을 멸망치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의 기억하심과 돌보심, 그리고 원수들을 향한 보복 등이 없으면 자신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간구하며 그에 기초한 구원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주님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요청하면서, 15절 서두에서 이러한 모든 요청과 간구의 근거로 하나님이 자신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든다.
16~18절: 예레미야는 자신이 말씀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은 예언자임을 강조한다.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는 16절의 표현이 그렇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 앞에 선포해야 할 예언의 말씀을 주셨을 때 그것을 받아먹었다. 주의 말씀은 그에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16절). 예레미야의 이 말은 자신이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말씀의 종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그는 주께서 주신 말씀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아먹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때때로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암 7:10).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에게 주의 말씀은 "불"과도 같은 것이요,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와도 같은 것이었다(렘 23:29). 그들이 예레미야를 괴롭히고 그를 박해하고 죽이려고까지 한 것은, 순전히 그가 선포한 심판의 말씀이 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폭력적이다 보니, 예레미야는 자신이 선포한 심판의 말씀을 무시한 채로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바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삶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17절).
그래서인지 예레미야는 주의 말씀으로 인한 박해와 저주 때문에 자신의 고통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며 상처는 도무지 나을 기미가 없다고 탄식한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성실하게 잘 수행하고 있는데도 고통과 상처가 멈추지 않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일컬어 마치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wadi) 같다고 말한다(18절). "생수의 근원"(2:13)이시던 하나님을 일컬어 이제는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과도 같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한 것이다.
19~21절: 예레미야의 탄식과 불평에 응답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부드럽게 그를 책망하시면서, 그가 회개할 필요가 있으며 더 이상 하나님께 그처럼 모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19a절). 만일에 그가 회개하여 방향을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이끌어 자기 앞에 세우실 것이요, 만일에 그가 헛된 것을 버리고 주의 귀한 말씀을 계속해서 선포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자기 입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로써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까닭에 그는 범죄한 유다 백성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는 야웨께로 방향을 돌이킬지언정 유다 백성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19b절).
바로 이어서 하나님은 폭력적인 원수들에게서 그를 보호해 줄 것임을 약속하신다. 그는 먼저 예레미야를 유다 백성들 앞에서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실 것이요, 그들이 그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써 그를 구하여 건지실 것이기 때문이다(20절). 하나님은 또한 예레미야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무서운 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21절). 이러한 구원의 말씀은 그가 맨 처음 예언자로 부름받았을 때 주어진 말씀(1:8, 18~19)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바, 이는 그가 절망과 고통의 밑바닥에서 새롭게 제2의 소명을 경험한 것이나 다름이 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15절: 예언자는 15절에서 탄식과 불평의 어조로 하나님께 다섯 가지를 요청한다. 그 첫 번째는 박해와 저주에 직면(20:10)한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해 주시는 것이야말로 그의 삶을 가장 안전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두 번째로 온갖 박해에 시달리는 자신을 돌보아 주시고 보살펴 주실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기억의 대상이 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행동을 포함하는 바, 자신이 말씀의 종으로 세운 자를 돌보시고 보살펴 주심이 바로 그러한 행동에 해당한다. 예레미야가 세 번째로 요청한 것은, 자신을 박해하고 괴롭히는 자들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이다.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모진 고통과 수난을 겪은 그로서는 원수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복하심이 절실했을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보복을 해주셔야 그들의 박해와 저주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자신을 멸망치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의 기억하심과 돌보심, 그리고 원수들을 향한 보복 등이 없으면 자신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간구하며 그에 기초한 구원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주님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요청하면서, 15절 서두에서 이러한 모든 요청과 간구의 근거로 하나님이 자신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든다.
16~18절: 예레미야는 자신이 말씀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은 예언자임을 강조한다.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는 16절의 표현이 그렇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 앞에 선포해야 할 예언의 말씀을 주셨을 때 그것을 받아먹었다. 주의 말씀은 그에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16절). 예레미야의 이 말은 자신이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말씀의 종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그는 주께서 주신 말씀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아먹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때때로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암 7:10).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에게 주의 말씀은 "불"과도 같은 것이요,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와도 같은 것이었다(렘 23:29). 그들이 예레미야를 괴롭히고 그를 박해하고 죽이려고까지 한 것은, 순전히 그가 선포한 심판의 말씀이 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폭력적이다 보니, 예레미야는 자신이 선포한 심판의 말씀을 무시한 채로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바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삶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17절).
그래서인지 예레미야는 주의 말씀으로 인한 박해와 저주 때문에 자신의 고통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며 상처는 도무지 나을 기미가 없다고 탄식한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성실하게 잘 수행하고 있는데도 고통과 상처가 멈추지 않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일컬어 마치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wadi) 같다고 말한다(18절). "생수의 근원"(2:13)이시던 하나님을 일컬어 이제는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과도 같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한 것이다.
19~21절: 예레미야의 탄식과 불평에 응답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부드럽게 그를 책망하시면서, 그가 회개할 필요가 있으며 더 이상 하나님께 그처럼 모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19a절). 만일에 그가 회개하여 방향을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이끌어 자기 앞에 세우실 것이요, 만일에 그가 헛된 것을 버리고 주의 귀한 말씀을 계속해서 선포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자기 입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로써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까닭에 그는 범죄한 유다 백성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는 야웨께로 방향을 돌이킬지언정 유다 백성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19b절).
바로 이어서 하나님은 폭력적인 원수들에게서 그를 보호해 줄 것임을 약속하신다. 그는 먼저 예레미야를 유다 백성들 앞에서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실 것이요, 그들이 그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써 그를 구하여 건지실 것이기 때문이다(20절). 하나님은 또한 예레미야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무서운 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21절). 이러한 구원의 말씀은 그가 맨 처음 예언자로 부름받았을 때 주어진 말씀(1:8, 18~19)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바, 이는 그가 절망과 고통의 밑바닥에서 새롭게 제2의 소명을 경험한 것이나 다름이 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