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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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의식물 ] 이강근 목사 22. 가나안 땅의 포도와 포도주(1)

이강근 목사
2021년 06월 29일(화) 08:09
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포도나무의 고목들.
이스라엘 네게브사막의 거대한 포도밭.
네게브 아브닷 비잔틴시대 거대한 포도주틀. 교회와 수도원에 공급하기 위한 포도재배가 이루어졌다.
포도는 유대인에게 아주 특별한 식물이다. 단순히 즐기는 과일이 아니라 삶과 종교에 의미 있는 용도로 마신다. 특히 건기가 긴 가나안 땅의 기후로 인해 포도를 숙성시킨 포도주는 일년 내내 식탁에 오르며 신과 인간을 연결한다. 성경에는 포도가 언급된 그 횟수가 363회나 된다. 가히 성경의 식물이다.

가나안 땅에 포도가 얼마나 많았는지는 이미 주전 15세기 이집트 문서에서 볼 수 있는데, 가나안 땅에는 물보다 흔한 것이 포도주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이 포도를 기록한 것은 이미 노아 때부터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창9:20). 노아 홍수 이후 처음으로 시작한 농사가 포도농사였고 가나안 땅에 포도가 얼마나 많았는지는 창세기 49장 11절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창49:11). 수확한 포도를 즙으로 만들어 보관하기 위해 바위를 깎아 만든 틀에서 포도를 밟아 즙으로 만들 때의 모습을 보자.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냐"(사63:2) 당시의 길게 늘어뜨려 입는 의복의 밑부분이 밟는 포도즙에 닿아 붉게 물든 생생한 표현이다.

성경의 땅에서 포도주농사는 올리브 농사 만큼이나 많았다. 성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대의 성읍 터에는 반드시 바위를 파서 만든 올리브기름 틀과 포도즙 틀이 있다. 올리브 틀인지 포도즙 틀인지를 구별하는 것도 간단하다. 단단한 올리브 열매와는 달리 포도 열매는 쉽게 물러 산지든 평지든 포도밭에서 바로 즙을 만들기에 포도즙 틀은 반드시 포도밭에 위치해 있다. 이는 이스라엘 북부 뿐만 아니라 네게브 사막에서도 마찬가지다.

네게브 남부의 옛 나바티안 도시 위에 세워진 비잔틴교회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것이 포도즙 틀이다. 교회와 수도원에서 매주 포도주가 예배 예식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근을 둘러보면 사막의 굽이치는 골짜기를 따라 계단식으로 물을 저장하는 방법으로 포도재배를 했다. 성지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질도 중요했지만 예수님이 마셨다는 의미가 있어 인근 나라의 많은 곳으로 수출도 되었다.

메소포타미아가 보리농사를 시작해 보리를 숙성한 맥주가 보편적이었다면, 가나안 땅에서는 포도주가 이를 대신했다. 유대인 남자아이가 난지 8일만에 할례식을 행할 때 넘치도록 한 잔 가득 담은 포도주 잔이 들려진다. 예식에 따라 어른들이 한 모금씩 돌려가며 마시지만 특별히 할례식 직후 아이가 통증으로 자지러지게 울 때 손가락으로 포도주를 찍어 아이의 입에 묻혀준다. 통증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처음으로 포도주를 맛보는 순간이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통 중일 때 우슬초에 신포도주를 묻혀 예수님의 입에 넣어준 것을 연상케 한다. 이후 성년식이나 결혼식 그리고 매주 안식일이나 매 절기 때마다 포도주가 등장한다. 식탁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세 개의 요소인 곡식 포도주 기름이 올려지는 것이다.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11:14)

최근 이스라엘 과학자들은 성경의 오리지날 포도주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예루살렘 다윗 도시에서 고고학 발굴로 발견된 3000년 전 포도씨와 현재 이스라엘 전국에서 찾아낸 100여 종의 야생포도를 비교해가며 토종 가나안 생 포도를 찾아내었다. 7세기 무슬림 시대 이후 천 수백 년 동안 와인을 금한 무슬림의 통치 하에서 가나안 땅의 토종 포도가 사라진 것이다. 지금의 이스라엘 산 포도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들여온 종인데, 이번 발굴이 옛 다윗이 마시던 성경의 포도주를 되살려 낸 것이다. 이렇게 재 생산된 성경시대의 포도주는 현재의 유대인에게 종교적인 과거를 연결해 줄만큼 특별한 것이다.

뭐니 뭐니해도 가나안 땅에서의 포도주의 가장 큰 의미는 역시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생애에 첫 이적은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이다.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 주에 유월절 만찬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흘릴 피를 포도주로 비유하셨다. 이후 2천 년 간 교회에서는 매주 포도주를 나누며 주님의 피를 기념한다. 포도주는 예수님 구원의 상징으로 구약에서 신약을 넘어 오늘날의 교회에서 예수님의 피로 상징된다. 일상의 음료에서 종교적인 상징으로 그리고 교회 안에서 구원의 상징으로 거듭난 것이 성경이 말하는 포도주다.

영상보기 : https://youtu.be/yx0bVhvGdpk

이강근 목사 / 이스라엘 유대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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