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목회

듣는 목회

[ 목양칼럼 ]

전종은 목사
2021년 06월 16일(수) 08:14
몇 해 전 여름휴가 때 고향 어머니 댁을 찾은 적이 있었다.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할 겸 시내로 나갔다. 시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뜨거운 햇빛을 피해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와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놓으셨다.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한 이야기, 자식들을 낳다가 죽을 뻔했던 이야기, 그 동안 살면서 고생한 이야기들을 한참 하셨다. 나는 가만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가슴 속에 파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울기도 하시고 웃기도 하면서 얼굴이 점점 환해지셨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오늘 아들하고 이런 데 와서 이야기를 하니깐 참 좋다"고 하셨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니에게도 우울증이 왔다. 원래 사람들과 어울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신데 시골 동네에 어울려 사는 사람도 몇 없고 시원하게 말할 상대도 없다 보니 마음에 병이 온 것이다. 지난달 아버지의 팔순으로 가족들이 모였을 때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누님이 이런 말을 하였다.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은 자식들이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는 것'라고 하였다. 누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들어 주는 것'이 노인들의 정신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도 노인이 많이 계신다. 코로나로 집에서 갇혀 산지가 1년이 훌쩍 넘었다. 답답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노인들 중에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다.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노인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마스크를 쓴 채로 1년 넘게 교회에 나오지 못한 분들을 찾아뵈었다. 성도들은 1년 만에 만난 목사를 반갑게 맞이 해주었고 그 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삶의 이야기들을 꺼내놓으셨다.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는 필자의 어머니가 카페에서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셨다. "오늘 목사님께 내 이야기를 하니깐 속이 다 시원합니다. 목사님, 바쁘신 데도 들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목사의 삶은 늘 말하는 위치이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 나는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은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말을 더 잘할 수 있을까? 늘 이 궁리를 하며 산다. 그러나 코로나의 시간을 보내면서 말하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듣는 가운데 울고 웃는 일들이 일어났다. 듣는 가운데 성도들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말하는 자는 들어 주는 자를 향하여 너무나 고마워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로 사람들의 얼굴이 이렇게 환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듣는 것도 목회였고 듣는 것이 지혜였다.

일찍이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솔로몬도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지금까지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말 잘하기만을 원하였지만, 이제 기도의 방향을 바꾸어야겠다. 솔로몬처럼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듣는 목회를 통하여 답답하고 우울한 성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상쾌하게 해 주는 그런 목회자로 살고 싶다.





전종은 목사 / 평택 신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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