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린다

나는 기다린다

[ 목양칼럼 ]

박재학 목사
2021년 05월 25일(화) 09:36
우리 교회는 매년 4월과 5월 사이 제자 훈련생들을 대상으로 국내 성지순례를 진행한다. 용인 순교자 기념관을 시작으로 여수 애양원, 'ㄱ자'교회로 알려진 김제 금산교회, 염산교회, 강경 성결교회, 증도 문준경 기념관, 양화진 등이 주 목적지이다.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신앙을 재조명 해보며 다시 믿음의 기초를 다지는 데 의미가 있다.

순례의 길을 마치고 간증을 나눌 때면 빠짐 없이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저녁 기도회 시간에 진행하는 '천국 가는 길'이다. '천국 가는 길'은 자기 죽음을 미리 앞당겨 보고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며 유언을 남기는 시간이다. '천국 가는 길'을 통해 훈련생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소감은 "유언장을 쓰고 나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느낌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의미 있어지는 것 같다"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 표현이 어떤 것인지 공감한다. 필자가 9년째 매년 4월이면 유언장을 고쳐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순절 고난 주간을 보내며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은혜를 누리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렇게 죽음을 예비하면 오늘의 삶은 더 풍성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도 아닌데 무슨 유언장을 벌써 써 두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이 언제 어느 순간에 들려질지 모르기에 사랑하는 아내에게 남기는 말, 아들과 딸에게 남기는 말, 그리고 사랑했던 교우들과 친구들에게 남기는 말, 장례식은 누구에게 부탁 할 것이며 어떤 찬송을 불렀으면 좋을지 등을 고쳐 쓰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언장에 써 내려 가는 말들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지기도 한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산 지 30년, 아들의 아빠가 된지 29년, 딸의 아빠로는 이제 25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생각해 보면 가장 많이 한 것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린 소년 시절에는 빨리 성년이 되길 기다렸고, 성년이 된 후에는 좋은 배우자를 기다렸고, 결혼 후에는 귀엽고 사랑스런 자녀를 기다렸다. 전도사 시절에는 목사가 되는 것을, 목사가 된 후에는 담임목사가 되기를 기다렸다. 매 순간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나 아무 것이나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다리고 싶지 않은 것을 꼽으라고 하면 죽음의 순간일 것이다. 죽으면 천국 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죽을 날은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것을 기다린다. 현재의 상황을 바꾸어 줄 새로운 상황을 기다리고 새로운 희망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음을 기다린다. 나의 죽음을 예비하며 산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도 권하며 살고 싶다.

필자가 기다리는 죽음의 이미지는 황혼의 저녁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있는 아침이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 130:6). 파수꾼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아침을 기다리는 간절함은 다른 어떤 기다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며 자기 일에 충성하는 시간이 아닐까? 이 땅에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다가 아침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게 되는 여정. 그래서 죽음과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저녁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아침과 잘 맞는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인생 시계는 몇 시일까? 아침 교대 시간이 되기까지 몇 시간이나 남은 것일까? 나는 오늘도 그 아침을 기다린다.



박재학 목사 / 광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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