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서 적용하는 기독교신앙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는 기독교신앙

[ 2~3월특집 ] 한국교회 백신을 찾아라- 바른신학 바른신앙⑤

박창운 목사
2021년 03월 16일(화) 10:08
코로나 19가 터지자 한국교회의 약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구지역에서 촉발된 신천지발 코로나사태를 통해 이 땅의 가장 해악한 이단의 실체가 드러나는가 싶었지만, 이어 나오는 한국교회 내 몇몇 교회와 선교단체의 헛발질로 인하여 도리어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으로 그 소리가 옮겨갔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코로나 19는 어떤 공산국가가 선교사를 추방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에서부터, "이 땅의 성적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까지 의아한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래서 이번 기획의 주제가 마음에 와 닿는다. "한국교회의 백신을 찾으라"에 덧붙여진 부제로서의 "바른 신학 바른 신앙!"말이다. 정말이다. 바른 신학이 없으니 바른 신앙의 행보가 결여될 수밖에.

교회,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교회, 바로 이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최근 기독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10년 후 신앙생활 예상"에서 기독청년 3명 중 한 명이 "교회를 다니지 않을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Numbers 84호). 비극적이게도 이들에게 있어 교회라는 말은 필요악, 아니, 더 이상 "그런 용도로도 필요하지 않는" 이라는 의미가 생겨난 것 같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교회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가? 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론"이다. 에베소서를 펼치면 곧바로 교회가 얼마나 벅찬 대상인지를 보여준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교회인 우리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를 기술해 나가는데, 그는 바로 글 초입에서 놀라운 진술을 드러낸다. 교회를 생각하기만 해도 이를 만드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손길과 열심과 섭리에 압도되어 찬양을 한다(엡 1:3~14, 참고, 이 문장은 원문으로는 복합문장의 형태를 띤 한 문장으로 되어있다. 이는 억제할 수 없는 감격의 노래가 가슴에서 터져 나옴을 드러낸다). 그렇다. 바울에게 있어 교회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주제였다. 그래서 생명과도 같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온 맘을 다해 격려하고 바르게 교훈하며 교회가 마땅히 가야 할 삶과 길을 열심을 다해 가르친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는 이러한 감격이 자리 잡을 곳이 없는 듯하다(참고, 이번 기획시리즈 두 번째 글을 참조하라).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국교회. 바울이 오늘 한국교회를 보면 어떤 권면을 먼저 하고 싶을까? 이 질문에 디모데후서는 중요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디모데후서를 펼치면 공동체의 위기가 도드라진다. 당시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던 디모데는 여러 가지 힘겨운 일에 봉착했다. 늘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연약함은 말할 것도 없고, 핍박이 점점 드리워지는 상황 속에서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교회는 점점 흔들렸고, 목회를 하는 디모데는 그 상황 속에서 두려워했다.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할 것인가?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이 꿈꾸시며 행하셨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다시 강조한다. "충성된 사람들을 가르치라. 그리하면 그들이 또한 다른 이들을 인도하며 가르칠 것이다(참고, 딤후 2:1~2)." 힘겨운 교회 상황에 의기소침한 디모데에게 바울이 하는 말은 아주 자명하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제자 삼으라.

제자를 불러 양육하고 이들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선포하시는 주님은 가장 먼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제자화하신다. 그리고 공생애의 사역을 완수하시고 승천하실 때에도 주님은 이를 강조하신다. "너희는 가고 있는 동안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참고, 마 28:18~20)." 이 문장의 주동사는 "제자를 삼아"라는 말이다. 주님은 제자 삼기를 강조하셨다. 위기 속의 목회자 디모데에게도 바울은 제자화를 강조한다. 상호격려와 기도함과 말씀 속에서 자라남을 꿈꾼다.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이 힘겨운 시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준다. 교회의 규모와 상관없이 교회 속에 든든한 뼈대는 소그룹을 통한 제자도 함양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목회데이터연구소(Numbers)의 설문조사에는 또 하나 주목할 내용이 있는데, 이는 청년들이 꿈꾸는 교회가 다름 아닌 사랑의 나눔이 가득한 공동체였다. 이는 히브리서에서도 우리에게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참고, NIV "let us consider how we may spur one another on toward love and good deeds.")"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향하여 사랑과 선생을 북돋워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모이는 공동체를 강조한다. 교회에 왜 모이는가? 예배뿐만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이도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아주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진정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삶은 거창한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라, 원래 했어야 했던, 어쩌면 잊고 있었던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삶이다. 이 시대 이것 보다 더 중차대한 교회 내적인 소명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시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제자화의 정신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라!

지금까지 우리의 허약한 체질에 따른 가장 기본적인 교회의 삶에 대하여 기술했지만, 사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촉발되기도 한 비대면으로의 문화현상 이동과 이로 인한 교회 형태와 양육, 친교 자료에 대해서는 좁은 지면 관계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Churchome, 다름 세대를 위한 대담한 시도(목회와 신학, 3월호)"를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글귀를 통한 새로운 모색에 관한 힌트가 우리의 비대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또 다른 차원으로서의 "제자삼음, 사랑과 격려의 공동체"가 펼쳐질 수 있을지에 대한 연결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걸어가 보지 못한 오늘의 상황.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풀면 된다. 주님 안에서 지혜를 구하면서 말이다(참고, 약 1:5). 물론 주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말이다!

박창운 목사 / 대구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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