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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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생논평-정신건강 ] 코로나 시대 우울증 극복 대안

채정호 교수
2021년 03월 05일(금) 10:55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정부에서는 방역 수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물론 물리적 거리두기는 할 수 있습니다. 밀집, 밀촉, 밀폐된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은 방역을 위해서는 당연히 피해야 하지만, 이렇게 지쳐가고 힘들 때 사회적 존재인 우리보고 거리를 두라고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겨납니다. 진료 현장에서 보면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그나마 잘 지내시고 계시던 분들도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활동을 못 하게 되면서 급격하게 우울해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건강하던 사람들도 코로나 이후로 전혀 모임을 가지지도 않고 친구도 못하며 운동도 하지 않고 방에서만 지내다 보니 심한 우울과 불안증을 겪게 되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찾아야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로 인하여 고립되고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해야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학은 워낙 불가사의한 사실이 많아서 인체의 신비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일반 상식과 어긋나는 것이 있을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 의학의 모순 속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가 <로세토 효과>라는 것입니다. 로세토는 원래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구석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50년 이상 연구가 진행되어서 그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그 결과가 아주 놀라웠습니다. 보통 우리는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보건학의 건강 영향 평가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결과입니다. 뭐는 건강에 좋고, 뭐는 안 좋다 이런 속설은 많지만 연구 결과에 따라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담배 흡연은 확실히 거의 7년 정도 수명을 단축합니다. 혹시 지금 시청자 중에서도 담배 태우시는 분이 계시면, 요즘 청소년 금연 홍보물에 나오듯이 이제는 <노담> 하시는 것이 적어도 지금보다 7년 이상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칼로리 음식을 먹는 것은 몸에 확실히 해롭습니다. 혈관질환도 만들고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제는 거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이 로세토 주민들은 대부분이 엄청난 애연가였고 엄청난 고칼로리 음식을 아주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보건학적으로 보면 아주 안 좋은 조합이지요. 그야말로 생활습관병 즉 대사 질환 위험률이 너무 높은 집단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이 아주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이 마을에는 자살, 알코올이나 다른 중독, 궤양 같은 것이 없었고 범죄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알고봤더니 이 마을 사람들은 정말 즐겁게 어울려서 음식도 마시고 잔치를 벌이고 서로 왕래하는 것이 습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영화같은 데서 보신 적 있으시지 않으신가요? 결혼하려고 인사를 갔는데 다들 너무 환대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쏟아져 나와 축제를 벌이는 것 같은 장면이요. 이 마을의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일종의 집성촌 같은 마을이었는데 원래 이탈리아에 있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개인주의적이고 서로 소외시키고 소외되고 있는 서양사회에서 이렇게 함께 먹고 마시고 하는 사회적 연결이 보건학적으로 좋지 않은 행동을 중화시킨다는 모순이 바로 로제토 효과입니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으시고 흡연하시고 음식 함부로 드시면 안되십니다. 건강에 안 좋은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사회적 연결이 그런 악영향을 중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같이 억지로 사회적으로 떨어져있는 상황에서 흡연, 음주, 폭식 같은 것은 완전히 건강을 망칠 수 있습니다. 사람간의 연결은 건강에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적으로 연결이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은 심혈관계 중환자실에 들어갈 정도의 중한 질환에 걸려도 연결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2배 이상 잘 회복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옆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렇게 대단한 효과가 있습니다. 유명한 이야기 하나 드리겠습니다. 베트남 전 기억하시지요? 미국의 지원을 받던 월남이 완전히 패망하면서 미국이 철수하고 어떻게 보면 미국이 이기지 못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소위 베트콩으로 알려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군은 그야말로 게릴라 전술을 펼쳐서 미군이 아주 고전을 했습니다. 실제로 전선도 명확하지 않은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미군이 포로로 잡혔었는데 이들 전쟁 포로의 대우가 얼마나 끔직하게 열악했는지 유명합니다. 사실 제대로 된 수용소도 만들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토굴 같은 것을 파거나 얽기 설기 엮은 우리 같은 곳에 포로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이곳을 미군들이 유명한 호텔 체인인 힐튼이 빗대어 <하노이 힐튼> 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흔히 교도소에 간 것을 <큰 집> 다녀왔다고 하는 것 같은 것입니다. 나 하노이 힐튼에 있었어. 라면 전쟁포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환경이 열악해서 이 곳에 잡혀있던 포로들은 목숨을 잃는 수가 많았습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더위 속에서 지쳐서 많은 포로들이 죽어갔습니다. 여기서 유명한 제임스 스톡데일 중령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항공기를 타고 작전 수행 중에 대공포에 격추되어 살아남아서 장장 8년 간이나 포로 생활을 합니다. 추락하면서 다친 척추는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한 상황 속에서 폭행과 고문을 받고 그 열악한 감옥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견디어 냅니다. 이 때 미군들이 포로가 많이 되고 포로가 되고 난 후에 다른 포로들하고 소통을 하느라고 말을 하면 모진 폭행을 당하므로 자기 나름대로 신호를 만들어 냅니다. 탭 코드 즉 두드리는 코드라고 하는 것인데 ABCD 등 알파벳을 나름대로 표를 만드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1번 두드리고 잠시 후 1번 두드리면 A, 1번 두드리고 잠시 후 2번 두드리면 B, 이런 식이지요. 이것을 익혀서 몇 번 두드리느냐에 따라 OK 뭐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옆 감옥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못하게 하니까 이런 방법으로 간신히 대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아시겠지만 제임스 스톡데일 중령은 이 가혹한 환경 속에서 갖은 고문을 견디고 미국의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대외적으로 공표하라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있다가 평화협정이 맺어진 후 석방이 됩니다. 귀국 후에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훈장도 받고 중장으로 예편한 후 미국의 부통령 후보로까지 활약하게 됩니다. 그가 쓴 책 <베트남의 경험>은 베스트 셀러가 됩니다. 그 책을 인터뷰 하는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당신은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었습니까? 어떤 것이 당신을 견디게 만든 가장 큰 가치요, 힘이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 대답은 간결합니다. 바로 "The man next door!" 였습니다. 바로 "옆 감옥에 같은 그 사람, 내 동료" 라는 것입니다. 그 동료와 소통하고 그 동료와 연결되어 있고,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동료와 함께 있다는 것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연결된 사람, 바로 The man next door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같이 있기에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우리는 사람간의 연결에서 떨어지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눈부신 기술의 발전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을 이용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분들도 지금 유튜브를 통해서 뵙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기술을 통해서 우리는 연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신문물이 부담스러우면 전화를 이용하십시오. 왜 전화했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이라고 대답해 보십시오. "그냥" 전화를 걸고 "그냥"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사이는 이유가 있을 때만 전화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그냥" 전화하고 "그냥" 문자를 보내보십시오. 그리고 그냥 전화하고 문자 보내는 사람들을 실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마시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어보십시오. 전화하는 것이 쑥스러우면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쁘게 잘 쓰지 않았더라도 손으로 꾹꾹 늘러쓴 편지를 받는 것은 짠한 감동을 줍니다. 길게 쓸 말이 없으면 엽서도 좋습니다. 내용이 없으면 그냥 편지를 보내고 싶어서 보낸다고만 쓰셔도 됩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두고 연결하는 사회적 거리 "좁히기"는 어려울 때 견딜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행복학 연구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 아니 거의 하위권이라는 것은 보도 같은 것을 통해서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World Happiness Report, 즉 세계 행복 보고서라고 여러나라의 행복 지표를 매해 비교하는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하위권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행복지수가 해마다 점차 줄어드는 나라에 속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말 자체도 우리나라라고 할 정도로 우리가 중요합니다. 영어로는 My country입니다. 내 나라라는 뜻이지요. 집도 My home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중요한 나라인데 요즘에 들어서 "우리"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OECD에서 조사한 삶의 지표 여러 가지를 보면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10점 만점으로 따졌을 때 예를 들면 안전 같은 것은 9.5점이고 대개 5에서 7점 정도 사이의 지표를 보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0점 짜리 지표가 있습니다. 그것을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중요한데 우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 세계행복 보고서에서 늘 1-2위를 다투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한 때 유행어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행복한 순간이라는 느낌을 <휘게>라는 핀란드어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촛불이나 벽난로 조명 아래 평화롭고 편안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쉬면서 함께 한다는 느낌" 그 화목하고 따스함 같은 것에 쓰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이런 휘게를 놓치고 있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코로나로 식구들끼리만 집에서 지내는 시간들은 서로 잘 모르고 지내던 것을 잘 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걱정하고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동안 아주 당연하게 느끼고 항상 그럴 것 같던 일상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깨우쳤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이 있다면 그 때 그 때 잘 누리고 감사하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처럼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던 곳이 내게 얼마나 귀한 곳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명이 아프면 그 감염력으로 인하여 함께 있는 사람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가 아프면 다 아파집니다. 우리가 아프지 않으려면 서로 아프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잘 연결되어 있으면 아플 때 견디기가 수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정 상 외롭게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을 내밀고 싶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연결될 수 있습니다. 반려견 같은 동물도 좋고 그냥 길거리에 있는 나무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오가는 길에 있는 가로수에게 이름을 지어주어 보십시오. 그냥 지하철 출구를 나와 첫 번째 있는 가로수에게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 나무와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떨까요. 푸름이도 좋고 누렁이도 좋습니다. 그 가로수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오갈 때마다 한 번 미소를 지어주고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그 가로수가 나를 알아봐주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들과 하나 하나 연결을 가져보시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고, 그런 연결이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19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참 불쌍합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도 알고보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연결된 그 사람도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만 말을 해도 제 마음은 따듯해집니다. 혹시 방송을 보시고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으시면 그냥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축복해주십시오. 이런 것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째 손해보는 느낌이 드시나요? 상관없습니다. 스스로와 주변의 모든 것을 불쌍하게 여기는 따듯한 마음이 든 것만으로 우리는 함께 이 어려움의 강을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The man next door 즉 바로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과 함께 우리 모두 잘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채정호 교수/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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