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로서, 장로로서

목사로서, 장로로서

[ 목양칼럼 ]

김철민 목사
2021년 02월 03일(수) 10:31
우리 교회에 부임한 후 얼마나 지났을까. 초임 목사로써 버겁고 부담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 연배의 장로님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 천변이 내려다보이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장로님은 수첩을 꺼내셨는데, 작은 글씨로 일 번부터 십몇 번까지 일련번호가 죽 붙어 있었다. 장로님은 1번부터 조곤조곤 필자에게 말씀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장로님이 느낀 교회와 목회에 대한 건의와 제안사항들이었다. 경청한다고 했지만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그 많은 제안과 건의를 어떻게 소화하며 목회자의 입장에서 볼 때, 선후 완급 조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부담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로님은 브리핑하듯 일사천리로 설명하시곤 자리를 털고 일어서셨다. 그리고는 몇 달이 흘렀다. 장로님께서 또 그 레스토랑으로 저를 초대하셨다. 밥맛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장로님의 지난 건의 사항에 대해 이행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나름 목회자의 관점에서 설명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로님은 식사 후, 또 수첩을 꺼내 이런저런 제안을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사항이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동안 장로님은 저에게 "이전에 말씀드린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라고 질문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상 맛있는 식사 후, 당신의 말씀을 하시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다고 가르치려 들거나 훈계조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더욱이 젊은 아들 같은 목사를 바꾸려 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담담히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말씀하셨고, "제가 볼 때는 혹은 제 소견으로는"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겸손히 피력하려고 노력하셨다.

장로님의 건의 사항 중 이것은 꼭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행하지 못한 것도 많아 미안하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는데 되는 것이 없다면 내가 생각해도 서운할 것이다. 해서 어느 날은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어 보았다. "장로님! 제가 부족해서 응답하지 못한 것도 많은데 서운하지 않으세요?" 장로님은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장로로써 제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행하느냐, 안 하느냐는 목사님 몫이지요. 최종 결정은 목사님이 하시는 겁니다. 저는 다만 제 할 일을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로도 뒤 끝이 없으셨다. 저는 지금도 그때 장로님의 건의와 제안을 귀담아 듣고 그것을 목회에 반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있다. 그리고 목회자의 자리를 인정해 주시면서 당신의 임무를 다하신 장로님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샬롬!

김철민 목사/대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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