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차별이나 해악적인 행위 있어선 안돼

어떤 차별이나 해악적인 행위 있어선 안돼

[ 4월특집 ] 4.그리스도인은 n번방 사태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이택환 목사
2020년 04월 22일(수) 00:00
n번방 가입자 수가 최대 26만이라고 한다. 중복가입을 고려하면 이보다는 적겠지만, 유사한 디지털 공간이 부지기수임을 감안하면 디지털 성범죄 관련자는 그 이상일 수 있다. 이들을 전부 추적해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n번방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추적하여 개인적으로 처벌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다. 라이트 밀즈는 한 사회를 이해할 때 개인의 문제와 구조의 문제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취업자가 10만 명인 도시에 실업자가 몇 백 명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실업자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도시에 수만 명의 실업자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큰 틀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n번방 사건 역시 단지 개인의 문제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무엇보다 성범죄에 관대한 국내 법제도의 현실을 문제 삼는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 조두순 사건이다. 당시 조두순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교회건물 화장실에서, 초등학교 3학년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하여 성기와 항문 기능의 80%를 상실케 했다. 검사는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1심 법원은 가해자가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12년형을 선고했고 상고 법원에서도 그 형이 유지되었다. 그 조두순이 올해 12월이면 형을 마치고 나올 예정이다.

그나마 조두순이 12년형을 산 것은 오프라인 성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법은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더욱 관대하다. 이는 지난해 11월 대대적으로 진행한 다크웹 수사에도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손모 씨(당시 23세)가 운영하는 아동음란물 사이트에 대한 국제공조 수사를 벌여 32개국에서 310명을 검거했다(한국인은 223명). 문제는 미국에선 영상 한번 내려 받은 사람이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받는데, 우리는 1000건을 내려 받은 사람이 징역 4개월, 심지어 사이트 운영자는 초범이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다는 데 있다.

그 와중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지난 3월 17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서 6월 25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디지털 성범죄의 극히 일부인 특정인의 얼굴 등을 합성한 '딥페이크' 처벌 관련 조항만 포함됐다. 게다가 사전에 이 법안을 심사한 국회의원들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지가 논란이 됐다. 당시 그들 사이에 "상상까지 처벌하면 어떻게 하나", "딥페이크를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것이냐",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는 말 등이 오갔다고 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성범죄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된 배경으로 △성범죄에 관대한 사법체계 △그보다 더욱 관대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 △일반인은 물론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조차 성범죄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낮은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성범죄가 버젓이 성산업으로 대우받는 듯하다. 우리는 흔히 대한민국은 치안유지가 잘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이 성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7년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그 해 3만 2824건의 성범죄가 일어났다. 하루 89명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고하지 못한 성범죄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디지털 성범죄까지 고려하면, 성폭력 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n번방 사태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성범죄와 관련된 법을 강화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촉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이웃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가부터 출발해야 한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창 1:26),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존재'라고 말한다(시 8:5).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셨다(롬 8:32).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다 하나다(갈 3:28). 우리의 이웃이 이렇게 귀하고 중한 존재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성범죄는 단지 성적인 범죄 이전에 인간의 인간에 대한 어뷰즈(abuse), 즉 착취와 학대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노예나 짐승으로 대하고, 빼앗은 개인 민감정보를 이용해 상대방을 디지털 속의 애니메이션 같은 노리개로 취급하는 인간성 파괴행위다. 그 결과 한 인간을 끊임없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하고, 미성년자 시절부터 인생이 망가지게도 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심지어 성범죄자 자신도 탄로 나면 목숨을 끊기도 한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이웃을 사랑하는 올바른 방식,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합당한 방식을 세상에 선포하고 실천할 책임이 있다. 그런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범죄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어떠한 차별이나 해악적인 행위가 있을 수도 없고 또 결코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택환 목사/그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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