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인포데믹,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

팬데믹과 인포데믹,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

[ 주간논단 ]

김효숙 교수
2020년 04월 08일(수) 10:00
중세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기도의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발명한 시계는 근대적 산업사회를 추동한 기계로 평가된다. 시계가 수도원 벽을 넘어 장터와 광장에 세워지고 가정에 보급되면서 노동 행위를 동시화하고 표준화시켰으며, 지금까지도 인간의 활동을 제어하고 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처럼 시계는 설계 당시의 의도와는 다른 규모와 방향으로 인간의 활동을 규정하고 삶을 표현하는 일정한 형식이요 삶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기술이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중립적 도구라는 인식은 얼마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전제인가?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인식은 특정 기술과 기술이 사용되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서 인간의 주도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다. 즉, 기술에 대한 '인간중심적 사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 조사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19'에 따르면, 총 38개국 중 한국은 디지털 뉴스 이용 시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이며, 55세 이상의 사용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비율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국가와는 달리 한국의 유튜브는 정치적인 색깔이 뚜렷한 콘텐츠가 많이 유통되는 플랫폼이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이 연구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 정보를 토대로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믿음을 강화하고, 믿고 싶은 것을 더 선호하게 만드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시청시간 중 70%가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시청이라는 보도는 극심한 양극화를 미리 보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이러한 기술 알고리즘의 영향을 직시하기 위해 개최된 한 포럼의 주제는 "변화의 시작: 이게 정말(REALLY) 내 생각일까?"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자율적인 사고와 주체적 판단을 가로막아 확증편향이 가속화되고 사회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소위 '탈진실(post-truth)', "논리적 근거나 과학적 증거를 지닌 '사실'보다 감정적 동질성을 지닌 추측성 '의견'에 더 많이 반응하는 현상"은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에 비해 정치적 입장이 완고하다는 조사결과나 동일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향이 강화된다는 연구결과들은 기독교 공동체가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 깊게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탈진실 시대에 등장한 '가짜뉴스' 혹은 '허위정보'는 잘못된 정보를 전하거나 어떤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만이 아니라, 진실을 무효화한다는 데서 심각성이 더해진다. 진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허위정보로 피폐해진 이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나의 예수, 우리의 그리스도를 과연 어떤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번 사순절은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과 온갖 인포데믹(infodemic, 정보감염증)으로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숱한 언어로 설명되거나 설득되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가 생명을 살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 모든 이들의 일상에서 경험되길 기도한다.



김효숙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육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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