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심판관 돼야

교회,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심판관 돼야

[ 3특집 ] 선거와 교회-1.국회의원 선거,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는?

노치준 목사
2020년 03월 06일(금) 00:00
선거의 계절이 왔다. 오는 4월 15일이 총선의 날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면서 또한 그 꽃에 붙어 있는 벌레라고도 한다. 이 말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가치를 보여주는 전국민적인 축제이지만 또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험한 정치 놀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가 남긴 최고의 업적 가운데 하나는 폴리스에서의 민주정치"라는 말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 계속되어 온 "민주주의가 잘못되면 중우(衆愚)정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공존하고 있다. 이처럼 선거는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민주주의의 위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도이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

선거는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 즉 한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국가적 기념행사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거를 통해서 선출한다. 평소 이들은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여 권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막강한 권력 앞에서 국가의 주권을 가진 국민 개개인은 작고 초라하다. 그래서 국민은 자신이 국가의 주권자임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나 선거철이 되면 모든 후보들이 국민이 주권자임을 소리 높여 외친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서 나타난 국민의 뜻에 따라 막강한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또한 잃기도 한다. 선거는 국민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확인하고 증거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위대하고 소중하다.

선거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권력의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군주제나 귀족제와 같은 독재 정치는 평화로운 권력의 교체가 어렵다. 쿠데타, 혁명, 민란 등과 같은 비평화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선거와 투표는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벌레 선거

그러나 선거제는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나무를 죽게 만드는 벌레가 될 수 있다. 선거권을 가진 국민 개개인은 후보자에 대해서 그리고 후보자가 내세우는 정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예전에는 후보자나 정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 언론 과잉의 사회에서는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과잉된 정보와 지식, 이른바 페이크 뉴스(fake news)라고 하는 거짓되고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나 지식이 넘친다. 그 결과 후보자와 정책의 진실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잘못된 정보나 지식에 근거한 투표는 잘못된 지도자를 낳고 그것은 국가 공동체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선거를 할 때 투표 행위의 동기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투표자들은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를 세우겠다는 순수한 동기만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 개인적인 감정이나 분노의 투사(projection), 특정 지역, 특정 정당의 싹쓸이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바 사회적 분위기(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social climate)에의 편승 등 복잡하고 다양하며 건강하지 못한 요소들이 개입될 수 있다. 그 결과 선거는 최악의 지도자가 등장하고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한 최악의 지도자는 독일의 히틀러이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은 결코 강압이나 폭력적 수단을 통해서만은 아니다. 그가 만든 나치당이 집권하고 히틀러가 독일 권력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 것은 독일 국민이 선거와 투표를 통해서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에리히 프롬(E. Fromm)은 독일 국민의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가 최악의 지도자를 만들어 냈다고 갈파(喝破)한 바 있다.


#선거를 맞이하여 교회와 지도자의 바른 자세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는 선거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그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좌파이든 우파이든, 진보이든 보수이든 모든 국민은 교회의 성도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아야 할 인생들이다. 둘째, 좋은 정치인이든 나쁜 정치인이든 그들도 교회의 성도이다. 교회는 좋은 정치인을 사랑으로 칭찬하고 나쁜 정치인은 사랑으로 책망해야 한다. 셋째, 좌파든 우파든, 진보이든 보수이든 좋은 정치인이 있고 나쁜 정치인이 있다. 이 세가지 명제는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의 근본 전제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좌파든 우파든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면 안된다. 어느 한 편은 옳고 다른 편은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 개인은 정치적으로 어느 한 편에 설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어느 한 편에 서서는 안된다. 어느 한 편에 서는 순간 신앙이 정치 이념에 종속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어느 한 편에 서는 순간 다른 편에 서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교회는 특정 정치세력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그 모든 세력을 포괄하고 그 세력들 위에 있어야 한다.

교회는 좌파든 우파든 중도파든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행동이나 정책은 칭찬하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교회는 좌파든 우파든 중도파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고 그러한 행동이나 정책을 비판하고 책망해야 한다. 교회는 국가라는 운동장에서 진행되는 경기의 심판관이 되어야 하지 특정 팀의 선수(정치인)가 되어서는 안된다. 선수가 되려면 교회라는 이름을 내리고 정당을 세워야 하며, 목사라는 이름을 내리고 정치인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 팀이 이길 수도 있고 저 팀이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팀이든 반칙을 하면 그 잘못의 경중에 따라 엘로우 카드나 레드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심판관이요 정치를 넘어선 하나님 나라 건설의 일꾼 된 교회와 교회 지도자가 취해야 할 태도이다.

노치준 목사 / 전남노회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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