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도 국민이라면

신천지도 국민이라면

[ 시론 ]

탁지일 교수
2020년 02월 25일(화) 06:38
오늘 난생 처음으로 영상으로 예배에 참여했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총회의 권고를 존중해, 온 성도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드리며 온라인상으로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다. 교회마저 갈 수 없는 낯선 상황이,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4세기 중세 흑사병의 공포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 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라는 오늘 예배 첫 찬송처럼 회복의 소망을 마음속에 새기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당황스러운 사실은, 정체를 감추고 가만히 숨어들어와 교회를 무너뜨리려던 신천지가 코로나 전염병 확산의 근원지로 사회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신천지 대구 다대오지파에서 코로나 전파 및 감염이 이루어졌고, 흩어진 신천지 신도들로 인한 대규모 감염 확산의 공포가 아직 남아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먼저 '신천지 신도들도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지 감염이 일어난 곳이 신천지 거점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적 선입관과 부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무분별한 비난과 혐오는 역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어디서' 일어났느냐보다는, 신천지가 '어떻게' 접근하고 있느냐가 문제다. 대구경북을 관할하는 신천지 다대오지파의 중심인 대구 집회장소와 신천지의 성지인 청도에서 대규모 감염과 확산이 일어난 상황에서, 과연 신천지 지도부는 얼마나 정직하게 협조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현대판 양치는 소년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동시에 '신천지 신도들은 자신들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감염 상태에서도 거리와 실내에서 거침없이 포교활동을 진행할 정도로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보다 이만희 교주와 신천지 교리가 중요할 수는 없다. 설령 대규모 확산이 일어나 사회가 위태로워지더라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이웃의 안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소위 '강제개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위치추적과 동향파악에 탁월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감염과 확진의 위험을 안고 어디론가 잠적한 신도들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천지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드리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마귀의 짓"으로 바라보는 이만희 교주의 '특별편지'는 신천지의 왜곡된 세계관과 반사회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회와 사회에 지울 수 없는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신천지의 몰락과 소멸을 앞당길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천지의 고립을 지켜보면서도, 떠오르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세월호와 구원파' 그리고 '최순실과 최태민'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당시 오늘날의 '코로나와 신천지' 사태처럼 똑같이 좌절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구원파는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거의 패소한 적이 없이 여전히 건재하고, 국론분열의 원인제공자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의 끝은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인 국민들만 양분되었다. 혹시라도 '코로나와 신천지' 문제도 이렇게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사회는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고, 언론은 손익계산을 하며 시청률에 집중하고,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이 사태를 이용할 약삭빠른 손익계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세월호와 구원파'처럼 수많은 정정·반론 보도의 홍수 속에서 신천지는 다시 재기를 모색할 것이다. '역사는 기억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회는 신천지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불확실한 세상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복음은 불확실한 구한말 전래되고, 압제의 일제강점기에 뿌리내리고, 고난의 6.25전쟁을 통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를 요동치게 하나, 우리에게는 최후 승리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이 있다. 그렇기에 "너 어려울 때 힘주시고 언제나 지켜주시리"라는 오늘 영상 예배의 마지막 찬송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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