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중독자 청년 A

신앙중독자 청년 A

[ 논설위원칼럼 ]

이재혁 총무
2020년 02월 17일(월) 00:00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문득 스친 개념이 잊히지 않는다. 오후 11시, 청년A는 내일 교회에 가기 위해 이제 침대로 향한다.

'아침에 청소년부 예배를 드리고, 내일 교사회의 때는 특별히 보고할 게 있나? 없었던 것 같다. 내일 반 학생들이랑 점심 식사하기로 했는데, 그럼 대 예배를 못 드리는데… 청소년부 가기 전에 대 예배를 드려야겠다. 오후에는 청년 예배에 참석하고, 셀 모임까지 하고 리더 모임만 하면 끝나겠구나. 내일 리더 모임은 몇 시에 끝날까?' 내일 교회에 가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벌써 피곤이 몰려온다. '이런 생각 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겠지? 주님 내일 하루도 은혜 안에서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세요' 청년A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행여나 내일 피곤한 얼굴을 하게 된다면 듣게 될 말이 뻔하다. 걱정된다. "청년들이 교사를 많이 해야 부서가 활기가 넘쳐!" "나 때는 청년들이 교사하는 건 당연했어. 나도 다 해본 거야" "청년 예배만 드리면 예배드리는 거 아니야. 본(대) 예배를 드려야지" "청년은 청년부니까 먼저 청년부 사역도 감당하고, 다음에 다른 부서도 해야지" "네가 안 하면 누가 하니… 섬길 수 있는 것도 은혜야" "교회 사역이 우선이지!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거야" 끊임없이 들리는 이야기를 뒤로한 채, 청년A는 다시 잠을 청해본다.

청년A의 토요일 저녁은 아마 많은 청년에게 익숙할 것이다. 지역교회에서 신앙이 좋다고 평가되는 청년들은 대부분 많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부흥시키길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목회자와 청년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회에는 사역을 감당하는 청년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청년들은 언젠가 청년부가 부흥하여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함께 감당할 청년이 나타나리라 믿으며, 또 하나둘씩 역할을 감당할 때마다 부모세대로부터 믿음이 좋다는 칭찬을 들으며 스스로도 그것이 옳다고 믿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역할을 감당해내고 있다.

청년A가 잊지 못한 개념은 구글 사전에 나와 있는 '중독'의 개념이다. 청년A는 위와 같은 부모세대의 말들에 젖어 버렸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좋은 믿음은 많은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라 여긴다. 이것이 지속 되면 될수록 몸과 마음이 지친다, 그래서 교회를 떠날까 생각도 하고 믿음이 약해진 자신을 자책도 하지만 '많은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좋은 믿음인가?' 질문할 수는 없다. 자신도 그 질문에 반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년A는 이미 신앙중독자이다. 믿음이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하지만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얼마나 많은 사역을 열심히 감당하느냐를 통해서 믿음을 점검해 나갈 것이다. 시간이 지나 사역을 감당할 힘이 고갈될 때, 청년A는 죄책감을 안은 채 교회를 떠날 것이다.

이것 말고도 청년세대에 문제가 많다. '청년의,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해' 많은 것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해결책이 나온다고 해서 그 해결책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도 없다. 저마다의 생각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믿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확실하다. 더 늦기 전에 청년의 이야기를, 목소리를 들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나선, 판단하지 말고 공감해주시길 바란다. 공감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려운 게 맞다. 나 때는 안 그랬기 때문에, 그렇지만 나 때는 나 때고, 청년의 때는 청년의 때다. 다름을 인식하고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을 때, 청년이 살아나리라 믿는다.

이재혁 총무/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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