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자가 집례하는 성례도 효력 있나

배교자가 집례하는 성례도 효력 있나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5> 도나투스 논쟁

박경수 교수
2019년 08월 30일(금) 00:00
배교자 vs 고백자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기 이전 그리스도교인은 종종 박해의 대상이었다. 로마제국의 통치이념에 어긋나거나, 황제의 통치행위에 방해가 되거나,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억압과 박해가 가해졌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재위 284~305)는 통치 말기에 제국이 점차 쇠락하자 로마의 옛 신들에 대한 숭배정책을 구심점으로 삼아 로마제국 부흥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303년경 로마의 옛 신들과 황제 숭배를 공공연히 거부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大)박해시대"가 시작되면서, 교회는 파괴되고, 성직자는 추방당하고, 성경은 몰수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이 와중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였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신앙을 포기하였고, 성직자 중 일부는 교회의 보물인 성경을 넘겨줌으로써 배교의 길을 걸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는 2년쯤 지속되다가 그가 황제의 직위에서 돌연 물러남으로써 막을 내렸다. 박해가 지나가자 또 다른 문제가 교회를 혼란과 분열로 몰아갔다. 배반자, 특히 교회의 성물인 성경을 넘겨준 '배교자'(traditor)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더욱이 그가 교회에서 양떼를 책임진 성직자라면 그 죄가 훨씬 무겁지 않은가?



도나투스주의의 등장

배교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지, 엄격한 권징으로 출교시켜야 할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312년 카르타고의 새로운 감독으로 카이킬리아누스가 선출되었는데, 안수위원 세 명 중 한 사람인 펠릭스가 배교자였다. 모진 박해의 시기 동안 고난을 감수하고 신앙을 지켜낸 '고백자'(confessor)들은 배교자가 행한 안수의 효력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고백자들은 따로 모여 마요리누스를 새로운 감독으로 안수하여 세웠고, 그가 죽은 후 뒤를 이은 사람이 바로 도나투스이다. 때문에 고백자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를 도나투스주의자라고 부른다.

강경파인 도나투스주의자들은 배교자가 행한 세례, 성찬, 안수와 같은 성례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온건파에 속한 사람들은 배교자라 할지라도 회개의 일정한 절차를 거친다면 다시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성례란 그 자체가 효력을 지닌 은혜의 방편이지 사람의 도덕성에 따라 효력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교자가 행한 성례도 유효하다고 주장하였다. 성례가 그것을 행한 사람에 따라 효력이 좌우된다는 인효론(人效論)과 성례 그 자체가 효력을 지닌다는 사효론(事效論)이 팽팽하게 맞섰다.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논쟁

도나투스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교회가 거룩한 성도의 모임이기 때문에, 배교자를 비롯한 범죄자들을 과감하게 출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온건파는 이 땅 위의 교회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혼합된 몸'이기 때문에 지나친 순결주의는 교회의 보편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분파주의로 빠지게 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도나투스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오히려 온건파의 원칙 없는 혼합주의가 교회의 교회다움을 무너뜨릴 뿐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배교자가 행한 세례가 효력이 없다는 강경파의 주장은 재세례의 필요성을 낳았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세례는 반복할 수 없는 성례이기 때문에 재세례는 수많은 신학적 논란을 일으켰다. 16세기 재세례파 논쟁도 사실상 4세기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이러한 재세례 논쟁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나투스주의 논쟁은 교회의 성격과 성례전의 유효성 등을 둘러싼 신학적 다툼인 동시에 북아프리카 민족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된 정치적 논쟁이었다. 도나투스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아프리카 토착 전통을 옹호하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누미디아와 모리타니아 같이 농업에 기반을 둔 지역 출신인 반면, 온건한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카르타고와 같은 상업 중심의 도시에 근거를 둔 경우가 많았다. 도나투스주의가 정치적으로는 외세인 로마에 대항하는 아프리카 민족주의 운동과 결합하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억압받는 농민들과 연대하여 상업으로 부를 독점하는 지배계층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었다. 심지어 도나투스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키르쿰켈리온파('농촌의 오막살이를 전전하는 자들'이라는 말에서 유래됨)와 합세하여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일탈은 결국 국가 공권력의 개입을 초래하였다. 어쩌면 도나투스주의 논쟁에서 이 같은 사회ㆍ경제ㆍ정치적 경향의 차이가 신학적인 차이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었는지 모른다.



도나투스주의가 휩쓸고 간 자리

도나투스주의의 폭풍은 도나투스가 죽은 이후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교회는 분쟁과 다툼에 휩싸여 있었고, 북아프리카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도나투스주의라는 누룩을 칼을 사용해서라도 제거할 수밖에 없다며 '정당한 전쟁'(just war)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는 도나투스주의를 이단으로 금지하고 누구든지 도나투스주의를 따르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공표하였다. 한 세기 동안 이어진 도나투스주의 논쟁으로 초대교회 중요한 축이었던 아프리카 교회는 그 영향력을 현저하게 상실하였고, 이것이 이후 7세기 이슬람 세력이 아프리카에 진입했을 때 대륙 전체가 순식간에 이슬람의 수중에 떨어진 내적인 이유였다는 평가까지 있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순수성과 거룩성을 지키려는 순결주의와 교회의 하나됨과 보편성을 지키려는 포용주의 사이에 갈등이 있다.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것처럼 교회는 거룩한 동시에 보편적이다. 어떻게 하면 순수성을 지키면서도 하나됨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어렵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루려고 노력해야 하는 숙명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과제이다.

박경수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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