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빚어가는 세상

세월호 참사 7주기, 고난주간 기도회서 이홍정 목사 설교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진실의 인양'이라는 과제 남아"

이홍정 목사
2021년 04월 08일(목) 16:5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가 지난 4월 2일 세월호 참사 7주기 진상규명을 위한 고난주간 성금요일 기도회에서 전한 설교문.



"그래도 야훼여,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 당신은 우리를 빚으신 이, 우리는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백성입니다. 당신의 성읍들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야훼여, 이렇게 되었는데도 당신께서는 무심하십니까? 우리가 이렇듯이 말 못하게 고생하는데도 보고만 계시렵니까?" (이사야 64장 8~12절에서 발췌)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 존재에 대한 저의 고백은, 여전히 토기장이 손에 들린 한 덩이 진흙처럼, 보배를 담은 질그릇처럼, 하나님의 주권 앞에 자기 자신을 겸손히 비워내는 영성과 인간성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가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손에 들린 한 덩이 진흙이라면, 더욱이 우리가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라면, 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어이없는 집단적 생명 죽임의 사건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질 때마다, 먹먹한 마음만 일어날 뿐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야훼여, 이렇게 되었는데도 당신께서는 무심하십니까? 우리가 이렇듯이 말 못 하게 고생하는데도 보고만 계시렵니까?"라는, 오늘 이사야 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탄식이 저의 탄식이 되었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무총장으로 세월호 참사를 맞으며,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작은 동행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 4월 고난주간 성금요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침몰 해상지역인 북위 34도 동경 125도 지점에서 드린 해상기도회에 참여했습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하며, 당시 미수습자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침묵하는 바다, 그 바다의 침묵 가운데 스스로를 감추시고, 희생자들의 주검을 끌어 안고 애간장을 끊어내며 뒹구시는, 하나님의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신음소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외침이 되어 더욱 크게 들려졌고, 촛불시민혁명의 거대한 함성이 되어 시대의 양심을 두들겼으며, 끝내 불의한 세상을 전복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신음소리는 남북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분단과 냉전의 동토에 평화의 봄을 경작하는 농부의 노랫소리가 되었습니다.

지난 7년간 우리는 세월호의 전복이 만들어낸 불의한 세상의 전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찾아온 한반도 평화의 봄을 경험하면서, 평화공존과 통일의 희망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십자가 위에 부활의 영광으로 빛나는 죄 없이 아름다운 영롱한 순백의 영혼들, 세월호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지금 문재인 정권은, 정치권력 집단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며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고착된 상태에서 다시 신 냉전질서로 퇴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과 유가족들의 탄식으로 촉발된 돌멩이들의 외침과도 같은 시민의 함성이, 끝내 변혁을 이루는 광야의 소리가 된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로, 정치지도자들을 접견할 때마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우선순위는 생명의 안전이고, 정치적 가치는 주권재민이며, 국가적 목표는 한반도 평화"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위험사회의 낭떠러지 같은 세월호에 갇힌 채 끝내 삶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꽃다운 젊음의 희생자들이, 죽음의 바다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생명의 노래로 살아 돌아와, 이 땅에 생명의 안전이 우선적으로 보장받는 사회,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사회, 분단과 냉전을 넘어 평화의 봄을 일구는 한반도에 대한 꿈을 선물로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 앞에 통절하게 아픈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생명의 안전, 주권재민, 한반도평화, 이 세 가지 가치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과 그 죽음을 넘어서는 유가족들의 고통을 집단적으로 승화시키며, 세월호를 통해 하나님께서 빚어내신 우리 시대의 고귀한 가치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애통하며 신음하시는 이 세상의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결국 세월호 희생자들의 마음이요, 유가족들의 마음이며, 그 마음에 공감하고 행동한 시민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진실의 인양'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기억과 빛' 공간이 남아있지만, 그날의 진실은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이들을 향해 다 잊고 조용히 살라고 강요하는 무지와 폭력 앞에서, 유가족의 생의 의지는 지금도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7년째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켜주는 것을 기본의무로 부여받은 대통령과 정부의 상징인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진 엄마와 아빠들이 수백 일 동안 피켓 시위를 하고, 삭발을 하고, 눈비를 맞으며 노숙 농성을 해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유가족과 시민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인양되지 않은 채, 정권과 검찰 공권력의 깊고 어두운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최근 검찰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모든 의혹은 이것으로 정리되었으니, 이제는 다 잊고 그만해라, 가만히 있어라'고, 온 국민을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는 '진실의 인양'과 '공의의 실현'이라는 생명체를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절차적 정의'라는 맷돌에 매달아 수장시키고 있습니다. 권력에 의해 조정되고 타협된 '절차적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는 '절차적 정의'만이 참된 정의입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이런 식으로 기록되고, 이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결코 이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있어서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조력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지의 표명이나 또 다른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약속의 실천은 문재인 정권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역사의 잣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보다 더 날카로운 내일의 역사의 평가를 통해, 진실의 그루터기 위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새싹을 피워낸 대통령으로, 주권재민의 머슴으로, 인정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1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7주기는, 책임 있는 진상규명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304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은 대한민국의 생명의 안전을 열매 맺게 하는 한 알의 밀알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유가족들의 썩어 문드러진 마음이 치유되고 새 살이 돋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7년 전 그날, '집단살해'와도 같은 참사의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온 국민의 가슴 속에 깊게 패인 상처가, 생명안전, 주권재민, 한반도평화의 새 세상을 향한 확신으로 바뀌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의 기억의 유산은 이 땅에 생명의 안전을 지키는 토대요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의 부활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월호 진실의 인양은 신앙의 과제입니다. 비록 세월호의 진실이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채 가라앉아 있지만, 진리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반드시 역사 속에 부활한다는 신앙이 바로 성금요일의 신앙이요 부활의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십자가에 못박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참 생명의 빛으로 부활하셨듯이, 우리들의 기도의 행진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공의의 역사가 펼쳐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세월호 유가족들과 우리 신앙인들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마음속에 새겨진 자식들의 모습과 기억을 다시 살려내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그들의 바람을 닮은 세상을 더욱 섬세하게 빚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희망과 투쟁 속에서 이 세상을 새롭게 빚으시는 토기장이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고, 그 마음을 배우며, 진리가 살아 춤추는 평화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 떠나는 연대의 길에 서기 위해, 거문고의 줄을 다시 매고, 신발 끈을 단단히 고쳐 매야겠습니다. "야훼여,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 당신은 우리를 빚으신 이, 우리는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백성입니다. 당신의 성읍들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야훼여, 이렇게 되었는데도 당신께서는 무심하십니까? 우리가 이렇듯이 말 못 하게 고생하는데도 보고만 계시렵니까?" (이사야 64장 8~12절)



이홍정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