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식 자장면

[ 목양칼럼 ]

김철민 목사
2021년 02월 10일(수) 13:17
인도네시아 초기 선교 시절 '잘 먹고 잘 산다'는 일반적 수사가 남의 일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잘 사는 것은 사명감으로 노력한다 해도 잘 먹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제가 즐겨 먹던 된장, 고추장, 그리고 어머님의 집 밥에 대한 그리움은 향수병처럼 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먹성 좋기로 소문나 있었지만 그러나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오랜 기간 나의 살과 피를 만들고 오감을 만족시켜 준 '그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진짜 저를 괴롭힌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장면이었다. 나는 선교지에 나가기까지 자장면의 비중을 알아보지 못했다. 큰 실수였다. 선교지 도착 후 새록새록 혀끝에 감도는 자장면의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나를 스토킹 하는데 시도 때도 없었다. 그 자장면은 향기와 식감과 더불어 가차없이 나를 고문했다. 문제는 내가 사는 곳에 중국집은 있으나 한국식 자장면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체재(?)가 있어 그것으로 자장면 향수를 달래보기도 했지만 대체재는 비할 바 못 되었다.급기야 어느 주일예배인가에 먹는 것에 대한 설교 도중 자장면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되었다. "자카르타에 가면 내가 해야 할 일 가운데 버킷 리스트 일 번은 우리 가족과 더불어 한국식 자장면을 먹는 것이다!" 선언 아닌 선언, 그러나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주일 저녁이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식구들과 이른 저녁을 막 끝낸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리더니 자카르타로 출장 중인 성 집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뜸 "목사님! 저녁 식사하셨어요?"하고 물었다. 나는 얼버무렸다. 직감적으로 먹는 얘기를 하실텐데 반갑게 전화하신 집사님을 실망시켜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집사님은 지금 여기는 주안다 공항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곧 득달같이 도착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슨 비닐 백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자카르타 출장길에 일정에도 없는 그 한국식 자장면 집을 일부러 들러 소스는 소스대로 면발은 면발대로 따로 싸서 불기 전에 온다고 부리나케 오신 것이었다. 과거 설교 중 한 말이 생각나서 그 악명 높은 자카르타의 교통 지옥을 뚫고 부랴 부랴 오신 것이었다.

그날 나는 전혀 새로운 식사를 했다. 그냥 한국식 자장면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이라고 말하기도 아까운 자장면! 그것은 소스의 간이나 면발의 탄력 혹은 쉐프의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부족한 종을 기억하며 배려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집사님을 움직인 '천국식 자장면'이었다.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김철민 목사/대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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