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길이 지키세, 힘써 힘써 나가세

[ 주필칼럼 ]

변창배 목사
2020년 08월 12일(수) 00:00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정인보와 윤용하가 글과 곡을 지은 광복절 노래다. 바장조의 4분의 4박자, 전체 16마디로 구성된 행진곡 풍의 힘찬 노래다. 2연 8행 정형시를 1절과 2절로 나누어 곡조를 붙였는데 전형적인 두도막 형식 A(aa') B(bc)으로 지었다. 두 마디 끝을 모두 이분음표로 매듭짓고 반복적인 리듬감을 주어서 노래에 통일감을 준다. 마지막 작은 악절이 시작되는 13마디는 당김음을 사용했다. 덕분에 두 절의 마지막 가사 '길이 길이 지키세'와 '힘써 힘써 나가세'가 크게 강조되어 있다. 선율도 밝고 희망에 차 있다.

광복절은 1945년에 일본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제정은 1949년 10월 1일에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루어졌다. 매년 8월 15일에 정부가 경축행사를 개최하고 국가적으로 광복을 기념한다.

광복절 노래는 경하스런 날에 걸맞는 노래이다. 작사를 한 정인보는 1893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0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박은식,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다. 귀국한 뒤에는 연희전문학교와 이화전문학교 등에서 교육자로 활동했다. 실학을 기초로 국학의 개념을 정립하면서 민족사관의 확립에 주력해서 '조선사연구', '담원 시조집' 등을 남겼다.

작사가 윤용하는 1922년에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박태현, 이흥렬 등과 음악가협회를 만들어서 음악운동을 전개했다. 국민 애창곡인 가곡 '보리밭'과 동요 '나뭇잎 배' 등에 곡을 붙였다.

광복절 노래는 퍽 감동적인 노래다. 곡도 힘차고, 가사만 읽어도 가슴이 뛴다. 빛을 다시 찾은 조국의 땅을 만져보니, 바닷물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춤을 춘다. 목숨을 바쳐서 해방을 그리던 선열들을 노래한다.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순국선열의 부모와 형제, 후손을 '벗님'으로 그렸다. 나라없이 지낸 35년은 바로 해방을 위해서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다. 광복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이보다 더 절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나라 내 조국을 길이 길이 지켜야 할 사명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광복절 노래는 광복절을 제정한 정부가 1949년에 가사를 공모했다. 그 해 11월 30일까지 가사를 모아서 전문가로 하여금 곡을 붙이게 했다. 1950년 1월 1일부터 전국 관공서 학교 기타 식전에서 공식 사용했다. 이상의 사연을 1949년 11월 9일자 경향신문 2면 기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담당한 부서는 총무처 비서실 전례과. 이 때 광복절 노래 외에 삼일절 노래, 제헌절 노래, 개천절 노래, 새해의 노래, 공무원 노래 등 모두 6곡을 공모했다.

광복절 노래는 예정보다 늦은 1950년 4월 26일에 확정되었다. 6.25전쟁 직전이었다. 광복의 기쁨이 남북분단으로 이어지고, 한국전쟁은 동서냉전이 시작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광복절 노래 작사가 정인보도 전쟁에 휩싸여서 납북된 뒤 이북에서 사망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2020년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과 함께 광복 75주년을 맞는다. 미·중 간의 패권다툼과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 앞에서 광복 75주년의 의미를 새삼 새긴다. "길이 길이 지키세, 힘써 힘써 나가세" 가사를 깊이 음미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다시는 빛을 잃는 일이 없도록 굳건하게 지킬 것을 다짐한다.

변창배 목사/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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