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고 있는 십자가?

[ 독자투고 ]

양승만 장로
2020년 07월 10일(금) 11:20
매일 새벽 4시, 내가 사는 아파트 공원 걷기를 하면서 1시간 스트레칭 운동을 하고 있다. 200m 공원 건너편 장령산 울타리에는 흰색 철책에 빨간 덩굴장미꽃이 소담스럽게 울타리를 뒤덮어서 참 아름답고, 녹색 향연이 한창인 숲에서는 뻐꾸기와 때까치 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멀리 날아간다. 건너편 건물 5층 교회 종탑 꼭대기의 십자가에는 붉은 네온이 꺼져 있었다. 왜 그럴까? 생각했지만, 그저 걷기를 계속했다.

어두컴컴한 저녁에는 모든 교회의 십자가 빨간 네온이 불을 밝히는데, 저 교회의 십자가는 '혹, 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걷기 30여 분이 지났을까, 5층 교회의 입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십자가에 빨간 네온이 켜진 것을 보았다. 나의 걷기는 오래 전부터 했지만 오늘처럼 그런 모습을 본 일이 없었는데, 왜 그럴까? '아! 저 교회가 작은 교회라서 정해진 시간에 점등과 소등이 되도록 해놓았구나!'라고 생각하며, 걷기 운동을 끝내고 평소처럼 그 교회(산소망교회)로 나아가 새벽기도를 드렸다.

40여 년 서울 은광교회를 섬긴 장로로서, 오늘의 기독교 교계, 교회, 교인들 모두가 정말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회개하고 통회 자복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하는데, 교회의 십자가조차 꺼졌다는 것을 보면서 졸고 있는 십자가가 떠올랐다.

어느 잡지에서 본 글이다. 한국인으로, 구 소련지역 선교사가 안식년을 맞아서 귀국길에, 함께 온 한국인 3세 소녀들과 저녁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들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들은 서툰 우리말로 "서울에 와서 밤거리에 붉은 십자가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는 북받쳐 오르는 감격에 마구 눈물이 났습니다. 한국이야말로 하나님의 세상이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한국 서울이 참 부럽습니다" 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십자가지만, 저들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그렇게 은혜롭고 감사, 축복의 풍경으로 그렇게 눈에 비쳤다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이면 위 이야기에 누구나 가슴 뭉클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위 소녀들의 마음처럼 우리에게도 순수하고 믿음충만한 그런 때가 있었는데, 삶의 문제, 죄와 욕심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의 초심을 잊고 있으며, 주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몸 찢기시고, 피 흘리신 십자가는 힘들 거나, 어려울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면, 1973년 여의도 5.16광장 미스바에서 100만 명이 모여서 기도하면서 부르짖던 빌리 그레함 목사의 전도대회가 떠오른다. 눈물 뿌리며, 부르짖던 그 열정은 여의도 광장과 함께 사라졌는가? 나라가 이렇게 정치, 경제, 안보,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심각한 지경에 놓여 있어도 교회, 성도, 기독교계는 나 몰라라, 세상적인 욕심에 빠져서 헌신 봉사 희생은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4)

교회의 십자가 네온이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래도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졸고 있는 십자가! 여름철 시커먼 먹장구름과 함께 퍼붓는 빗줄기를 보면서, 마치 태양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항상 비치고 있음과 무엇이 다르랴!

코로나19로 인해 육신적으로 '방콕, 집콕' 생활은 졸고 있는 십자가와 같고, 탐욕으로 죄와 더불어 먹고 마심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서, 졸고 있는 십자가와 같다.

졸음과 깊은 잠에서 깨어나서 미스바 광장으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자. 졸고 있는 우리 자신과 교회와 기독교계, 그리고 나라의 통치자를 위해 니느웨성의 요나처럼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옷을 찢고 회개하자. 그리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양승만 장로/은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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