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 가정예배 ] 2020년 7월 1일 드리는 가정예배

천정명 목사
2020년 07월 01일(수) 00:10
천정명 목사
▶본문 : 시편 120편 6~7절

▶찬송 : 475장



"지금 평화를 말할 수 있을까?", "오늘 평화를 말해도 될까?" 지난 16일 오후에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는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다. 남북관계는 회복하기가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마주 대하고 있는 현실은 분단과 분쟁이다. 전쟁을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져간다. 내부의 분열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정치 권력자들이 전쟁을 말하기 시작한다.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실패의 책임을 바깥이나 다른 나라와 인종에게로 돌리며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국민들은 그들의 편 가르기에 휘말린다. 양편으로 갈라져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죽도록 싸운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이다. 그 도시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다. 성전은 하나님과 불화한 인간이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평화를 이루고, 영원히 이루어 가는 곳이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사람이 이웃과 평화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과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평화를 누리는 곳이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예루살렘과 평화하기를 갈망하셨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가 되고,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셨다.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면서 말씀하셨다(눅 19:42). 그러나 예루살렘은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가 아니라 불법과 폭력의 도시로 변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막 11:17).

오늘 본문의 성전 순례자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오랫동안 온통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그는 평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평화를 말했다. 그 순간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싸우려고 달려들었다. 싸움과 전쟁을 해야 권력과 자리가 유지되고, 평화로우면 챙기고 얻을 온갖 이익들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자신을 로마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할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런 예루살렘에 평화의 길을 알려 주시려고 나귀를 타시고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강도들의 소굴을 기도하는 집으로 바꾸셨다(마 21:12~13).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굳게 닫혔던 평화의 문, 생명의 문을 활짝 여셨다.

우리는 오랫동안 싸우려고 달려드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았다. 우리 핏줄 속에는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경쟁 본능이 흐르고 있다. 한국전쟁 후 70년의 남북한의 대결 속에서 평화보다는 전쟁을 말하는 것이 더 편한 언어가 되었다. 평화는 우리에게 아직도 불편한 언어이다. 그러므로 평화가 우리 몸에 배이도록 실천하는 연습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사람들이다. 성전 순례자처럼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어느 곳이든지 평화를 말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한반도에서 주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나라 국민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사랑하고, 이를 꿋꿋하게 지켜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천정명 목사/오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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