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땅을 밟아보고 싶다

[ 논설위원칼럼 ]

한경호 목사
2020년 06월 22일(월) 00:00
목사의 집안에서 자란 필자는 어린시절 가정예배 때마다 부모님의 기도 중 빠지지 않는, 이북에 두고 온 혈육을 위한 대목에서 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그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아직도 마음에 새겨져 있다. 우리 부모님의 고향은 평북 의주군 비현면이다. 아버님께서 서울역에서 기차타고 고향에 가는 과정과 고향 마을에 가까이 가서 집까지 걸어가는 그 주변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이 실감나게 얘기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에 그려진 그 고향을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늘 품어왔고, 생전에 그 고향에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내 나이 70이 다 되었다. 가볼 희망이 안 보인다.

나 혼자 비밀리에 가보는 방법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 대상이다. 내가 무슨 임수경도 아니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미국시민권을 가지면 갈 수 있겠지만 이 나이에 그건 난망한 일이고, 남의 나라 국민으로 가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첫째는, 법에 저촉되지 않아야겠고, 둘째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가야할 것이며, 무엇보다 남북 당국이 허용을 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주저앉아야 하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면, 정말 가보고 싶은 열망이 간절하다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먼저 이북 자손들 중 이런 생각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뜻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진지하게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세상에 자기 고향땅에 가보고 싶다는데 그걸 막는다면 나쁜 놈이다. 무슨 명분과 이유로도 그건 말이 안 된다.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 평생을 예수 신앙으로 살아왔는데 기도의 능력을 믿고 가면 되지, 계산을 너무 많이 하면 못 간다.

서북 사람들은 해방 후 이남에 내려와 정계와 군(軍), 그리고 기독교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중국을 통하여 서구문물을 접하면서 일찍 개화되었고, 기독교도 받아들였다.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장로 등 민족 지사(志士)들의 영향을 받아 애국정신도 충만하였다. 그런데 8,15해방 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리고 1,4후퇴 때 대거 월남하였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삶의 뿌리가 뽑혔으니 반공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는 전투적 반공주의자들이었다. 4.19혁명이 일어났을 때 서북지역 사람들은 그를 지지하였다. 공산독재에 맞서 싸워 이기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5,16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도 역시 지지했다. 공산주의를 이기려면 군사정부가 내세우는 경제부흥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산주의는 가난과 빈곤 속에 침투하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반공(反共)에서 승공(勝共)으로 주장을 한 단계 높였다. 승공은 말로만, 군사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의식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니 맞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경제 성장에 총력을 기울여서 오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민주주의도 크게 신장되었다.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이남의 경제력은 이북의 53배에 달하고, 군사력은 이남은 세계 6위, 이북은 세계 25위다. 정치와 경제체제에서 지금 이남은 이북을 현격한 차이로 모두 앞지르고 있다. 승공의 목적이 달성되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북 사람들은 이제 승공을 넘어 진일보한 미래의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로 퇴행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이럴 때 우리는 도산, 남강, 고당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무어라 하셨을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새로운 희망으로 민족의 앞날을 열어가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며칠 전 우리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보냈다. 70년은 유대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노예로 생활한 기간이다. 지난 70년간 우리는 어떤 면에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 나갔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도 70주년을 맞이하여 남북 간 대립의 장막을 걷어내고 새로운 희망의 커튼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첫걸음은 고향땅을 밟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남의 일이 아니다.

한경호 목사/횡성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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