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존폐논란 사형폐지, 기로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 올해 사형 집행 중단 선언 기대…1997년이후 미집행,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 유지
반대여론 여전, 강력범죄 있을 때 더욱 높아져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8년 07월 05일(목) 09:29
사형폐지국가선포식
예장 총회 사형폐지 촉구 기도회
#정부 수립 후 1310명 사형 집행, 지난 20년간은 사형집행 미시행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

우리나라는 법적 사형제도가 존재하는 국가이다. 사형을 법정 최고 형으로 명시하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사형수 1310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1997년 23명의 사형집행이 마지막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20여 년간은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제사면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은'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실제 사형집행 중단과 달리 흉악범에 대한 법원의 사형 선고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6년엔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인 L병장이 사형을 선고받았고, 올해 들어서도 딸의 친구를 추행하고 살해해 사체를 유기한 L씨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이 두 명의 사형수를 포함해 현재 국내 교정시설에 수용된 미집행 사형수는 6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처럼 법적으로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는 2017년 현재 57개국이다.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국가는 141개국으로 유지국의 두 배를 넘어섰다. 특별히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은 105개국, 일반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은 7개국,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29개국으로 확인돼 매년 사형폐지국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 사형집행 중단 선언 추진 공식화

이 같은 추세와 맞물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오는 12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기해 문재인 대통령의 '사형 집행 중단 선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사형집행은 법무부 장관의 재가를 받아 실시되지만, 장관 임명권자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사형집행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다. 대통령이 사형집행 중단을 선언할 경우 정부 차원의 사형집행 중단은 공식화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사형제도 중단 선언을 위한 노력과 함께 오는 10월까지 사형제도 폐지와 대체 형벌을 위한 실태조사도 실시하겠다고 했다. 9월 중에는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토론회 개최를 구상 중이다. 또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 검토와 함께 10월 10일 세계사형폐지의 날 성명 발표도 추진할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김은미 홍보과장은 "최근 사형집행 중단 선언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가 정책 추진보다 앞서간 경향이 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대통령 특별보고를 통해 사형제 폐지와 관련된 사안을 보고한 바 있다. 당시 대통령께서는 '사형제 폐지는 사회적으로 걱정과 우려가 큰 사안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이 제시되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안 마련을 위해 실태조사에 착수했고, 그 조사 결과가 오는 10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발표될 내용에는 사형제 찬반 여론조사를 뛰어넘는 감형 없는 종신형 등의 다양한 대안과 관련한 사안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된 보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협의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건의하면 판단하겠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여론은 여전히 '사형제 존치'

하지만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할 때는 범죄예방 등을 이유로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한 실정이다. 사형수의 인권과 사형제도의 야만성을 제기하며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언론사 등이 실시한 국내 여론조사에서는 '사형을 실제로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늘 과반을 넘어선다. 실제 지난해 11월 C언론사가 성인남녀 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사형 찬성은 52.8%, 사형 반대 및 폐지는 42.2%로 나타났다. 이같은 국내 분위기와는 반대로 세계 각국에서 진행된 사형제 찬반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사형제 폐지가 찬성을 월등히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사형제 찬성을 주장하고 있는 직장인 L씨는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벌이 없다면, 죄에 대한 경각심도 그만큼 감소될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생명을 빼앗기거나 심각한 피해로 일생을 괴로움 속에 살아야 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때 가해자에게 죄의 무게에 맞는 사형은 당연하다"며, "가해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형폐지 주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때 제3자의 2차적 가해일 수 있다고 본다. 강력범죄자는 재범률도 높은 만큼 사형제도는 유지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사형폐지 주장해 온 종교계, 30년의 땀흘림

사형제도 찬성 여론이 우세한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종교계는 지난 30년 간 사형폐지를 위해 꾸준히 힘써왔다. 종교계의 사형폐지운동은 1988년 시작됐다. 당시 서울구치소 종교위원이던 문장식 목사와 불교계 관계자가 사형폐지운동 단체를 조직하기로 합의하면서 종교계의 활동은 본격화됐다. 이후 1989년 한국 가톨릭이 공식 참여하고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창립되면서 국내 종교계 협의체를 필두로 사형폐지 공식운동은 확산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도 1990년 제75회 총회에서 사형폐지 연구추진 특별위원회를 조직했다.1992년엔 한국교회 교단 최초로 사형폐지를 위한 정책협의회를 개최한 바 있다. 1993년엔 기독교 전국교정교역자협의회가 사형제도 폐지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형제도 폐지를 청원하면서 교계 차원의 운동은 다양화됐다. 이외에도 200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교단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를 창립하면서 사형폐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5년엔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가 창립 25주년을 맞이해 초교파 기념대회도 진행됐다.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회장 문장식 목사는 "1980년대부터 국내 사형폐지운동에 종교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며, "성경을 보면 사형제도는 있어서는 안 된다.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구약에 율법주의가 있지만, 오히려 유대인은 가장 먼저 사형제도를 폐지했다"고 주장했다.

#사형폐지는 율법주의 보다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 정신 반영해야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가 앞장서 대통령의 사형집행 중단 선언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교계의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올해 사형집행 중단 선언에 이어 국회의 법안 발의를 통해 사형제 폐지까지도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임기 당시 수차례 사형제도 폐지가 추진됐지만 번번이 좌절된 상황을 경험했기에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장식 목사를 비롯한 교계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수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당시 사형수 6명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전례에 비춰 사형제도에 대한 정치권 및 사회 전반의 인식에 긍정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문장식 목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인간을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사람이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또 다른 살인이다. 정부가 이 일을 절대로 대행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교회와 크리스찬들은 성경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구약의 율법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 필요했다. 율법이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앞설 순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장식 목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말 대통령의 사형집행 중단 선언 요청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가난한 삶을 살았고, 약자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다. 이미 사형제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이번 기회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도 과반 이상이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하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평화를 위해서라도 사형제도는 폐기되어야 한다. 기독교가 평화통일기도회를 하지만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서도 더욱 기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임성국 기자

 한국사형폐지운동(기독교계 중심) 연혁
 -1988년 10월 서울구치소 종교위원 문장식 목사가 불교계와 사형폐지 운동 단체 조직 합의
 -1989년 2~3월 이상혁 변호사와 가톨릭의 참여로 확대
 -1989년 5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창립 총회
 -1990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75회 총회에서 사형폐지 연구추진 특별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의
 -1992년 3월 예장 총회 제1회 사형폐지정책협의회 개최
 -1993년 7월 사형폐지 아시아 동경포럼에 한국사형폐지협의회 대표 참석해 가두시위 펼쳐
 -1993년 8월 기독교 전국교정교역자협의회 정책협의회 갖고 헌법재판소에 사형폐지 탄원소 제출
 -1993년 1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 산하 사형폐지소위원회 조직하고, 정부에 사형폐지 청원
 -1996년 11월 헌법재판소 사형폐지 헌법소원에 합헌 결정(9명 중 7명 찬성)
 -1997년 5월 예장 총회 사형폐지위원회 사형제도에 관한 시민공청회 개최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 사형수 23명 교수형 집행
 -199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특사로 사형수 5명 무기로 감형
 -1999년 12월 제15대 국회 유재건 의원이 95명 의원의 서명을 받아 사형폐지 폐지특별법안 대표 발의
 -2001년 2월 사형폐지 범종교인 연합 출범
 -2001년 4월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출범
 -2001년 5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설립
 -2001년 10월 제16대 국회 정대철 의원이 155명의 의원 서명 받아 사형폐지 특별법안 발의
 -2002년 2월 예장 총회 제11회 사형폐지정책협의회 개최
 -2002년 11월 국회 도서관에서 한·일의원이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모임 갖고 사형폐지 선언 결의
 -2002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특사로 사형수 4명 무기로 감형
 -2004년 4월 기독교사형폐지운동 자료집 제7집 발행
 -2005년 4월 제17대 국회 유인태 의원이 175명의 의원 서명 받아 사형폐지 특별법안 발의, 입법촉구 결의대회 가져
 -2006년 3월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신자 12만명 사형제도 폐지 입법촉구 국회 청원
 -2007년 10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 사실상 사형폐지국가 선포식 개최
 -2008년 1월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사형폐지 선언 한국교회 감사예배' 드려
 -2009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특사로 모범 사형수 6명 무기형으로 감형
 -2011년 7월 제18대 국회에서 173명의 의원 서명으로 단일화 통해 김형오 의원 사형폐지 특별법안 대표 발의
 -2015년 7월 제19대 국회 유인태 의원이 173명의 서명 받아 사형폐지 특별법안 발의
 -2015년 10월 7대 종단 대표 국회 정론관에서 사형폐지 특별법안 국회 통과 촉구 결의대회 개최
 -2017년 1월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신년하례회 및 사형집행중단 감사예배서 사형폐지 특별법안 통과 촉구
 -2018년 1월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사형집행중단 21주년 및 2018년 신년 감사예배서 사형폐지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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