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월 22~2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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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22일(월) 10:13

월-분별하여 새롭게
본문 : 롬 12:1~3
찬송 : 289장

생활관의 구조 변경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기존의 것들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원리다. 깨고, 부수고, 채워가는 일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쾌적한 환경을 선물했다.
이미 깨끗하게 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갈까?
첫째, 우리의 영적 현주소를 정확하게 알자.
우리의 옛 거주소는 '사망동'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믿어진 사람들은 '생명동'으로 입주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요 5:24). 바로 주님께서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값으로 지불하여 얻어진 생명의 삶을 살고 있다(롬 5:10).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변화, 전과 후의 삶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음이다(고후 5:17).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 1:13). 허물투성이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현주소는 이렇게 분명하고 확실하다.
둘째로 새롭게 된 자는 낡은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기존의 것을 고수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헌 누더기를 벗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영적 삶의 중심을 침노하는 내안의 생각의 찌끼들을 벗어던지자. 주님의 의의 옷으로 새롭게 단장하자. 이미 삶의 푯대가 예수그리스도인 자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새롭게 된 자의 삶의 자리에는 주님의 부활의 생명이 활동하신다. 죽음도 생명도 주님과 연합된 자가 되었으니 우리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않아야 하며 의의 병기로 드려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노령의 연세를 사는 분들도 말씀을 묵상하면 전두엽의 기능이 유지된다고 한다. 말씀에 의지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셋째로 헌신의 제물로서 기능하자.
제물은 제사장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다. 내 의지는 없다. 주님은 당신의 사람들에게 산제물이 되라고 하신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조차도 마음의 왕좌에 주님 두기를 싫어하는 우를 범한다. 사역의 현장에서 주방사역을 감당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깨닫는 것은 식재료들의 반응이다. 어떤 식자재도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침묵의 순종으로 인한 밥상을 차리게 했다. 주님께로부터 새 생명 얻은 우리도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으로 주님 나라 생명의 밥상을 차리자. 삶의 영적 예배를 통해 계속적인 헌신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전 인격을 주님께 의탁하여 섬김의 종으로 드리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영적 현주소를 정확히 알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과, 제물로서의 정결함을 유지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영적 예배 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문희 목사
경안소망교회


화-부활 전 예수님은?
본문 : 유 1:14~16
찬송 : 490장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죽음을 맛보지 않고 바로 승천한 두 사람이 있다. 에녹과 엘리야다.
본문에 의하면 에녹은 아담의 7대 손이므로 노아의 증조부가 된다. 에녹은 예언자이고 그 예언의 내용은 심판이다. 하나님이 어떤 자를 심판 하시는가?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심판 하신다는 것이다. 본문 15절에 '경건하지 않은'이라는 표현이 네 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 그리고 16절에 무엇이 경건하지 않은 일인지 다섯가지 예를 제시한다.
첫째로 원망하는 자이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7-28). 항상 긍정적이고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부족한 우리 삶이다.
둘째로 불만을 토하는 자이다. 불만이란 만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돈으로 집은 사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다. 교회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곳이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셋째로 정욕대로 행하는 자이다. 정욕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있다(요일 2:16). 육신의 정욕은 인간의 삼대 본능인 식욕, 수면욕, 성욕을 말한다. 안목의 정욕은 명예욕, 이생의 자랑은 권력욕을 말한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하신 예수님을 마귀가 이 순서대로 시험했다. 뱀이 여자를 유혹할 때 이 순서대로 유혹했다.
넷째로 자랑하는 말이다.
다섯째로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일이다. 부활 전 삼일동안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에 이르는 한 집안 4대가 969년 동안 심판을 외쳤다. 하지만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한 명도 구원받지 못하였다. 주님은 부활하시기 전 그들을 찾아 가셔서 다시 한번 책망하시고 선포하셨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여!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않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해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심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하였으니 오늘도 경건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영상 목사
사천영락교회


수-이웃을 배려하는 사랑
본문 : 신 24:19~22
찬송 : 503장

세상에 가진 것, 아는 것, 높고 낮음의 지위 때문에 갑(甲)과 을(乙)이 존재하지만, 갑의 부당한 횡포와 권위의식의 갑질에 분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며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당부하며 좋은 이웃이 되라 하시는데,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한 때는 을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상대방과 비교하여 열등감 때문에 을이 되고 우월감 때문에 갑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당당한 갑이 되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 하기 전 430년 동안 그들은 철저히 을의 삶을 살았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기 전에 '죄의 종'이었고(롬 6:17-18)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을의 존재였으나 구속의 은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된 것, 이제 갑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부당한 갑질이 아니라, 선한 갑이 되라 하시며,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것을 기억하여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 하신다. 또한 세상에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만큼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하신 후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으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 것이요 그들에게 도움이 되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으로 이웃을 돕는 갑이 되자. '까치 밥'을 남겼던 조상들의 여유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추수하고 과실을 수확할 때에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남기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결코 무시당해도 좋을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으니,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하였으며, 예수님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셨다. 줄 수 있고 베풀고 나눌 수 있음이 기쁨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의 풍성하고 넉넉함을 형제와 이웃에게 나눔으로 더불어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데 거룩한 교회가 귀히 쓰임받기 원한다. 세상에서 내가 무시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신령한 갑인 만큼이나, 아직도 주님 밖에서 을인 이웃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삼아 주셨으니, 주님 사랑에 굶주린 형제와 이웃을 더욱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영주 목사
옥천교회


목-꿈을 이루는 성도
본문 : 전 9:10~12
찬송 : 150장

누구나 새해가 되면 금년에는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틀림없이 금년에는 성공과 행복을 거머쥐게 되는 승리의 날이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소망을 품는다고 누구나 다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문에서 말씀하는 내용들에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로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주어진 일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간혹 고학력이나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일을 안 하고 지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들은 어지간한 일은 하찮게 여기고 선뜻 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맞는 대단한 일이 꼭 올 것이라고 믿고 그 일만을 기다리며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다 결국 아무 일도 못하고 마는 패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람직한 생각을 가진 성도라면 비도덕적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지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서 임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이다.
둘째로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본문에서 '빠른 경주자'라도 선착하는 것이 아니고,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눈 여겨 봐야 한다. 운동 경기를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어제의 패자가 오늘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강대국이 영원한 강대국이 될 수 없다. 역사는 세계의 패권 국가가 계속 바뀌고 있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모든 분야의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겸손하게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져 꿈을 이루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자기의 시기를 알고 사는 것이 꿈을 이루는 비결이다.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홀연히 재앙의 날이 임하면 걸리게 된다고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인생은 항상 재난의 때와 올무에 걸릴 때와 재앙의 날이 찾아 올 수 있음을 깨닫고 항상 사려 깊은 삶을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내 삶을 나의 능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보다 앞서지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뜻대로 걸음을 옮길 때 시기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살아가다 실패하는 어리석은 사람의 반열에 서지 않고 꿈을 이루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인간이 아무리 큰 노력을 기울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허사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항상 내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동행하여 꿈을 이루는 길에 진입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성화 목사
유곡교회


금-엘리 제사장은 어떤 사람인가
본문 : 삼상 3:1~10
찬송 : 204장

우리가 알고 있는 엘리 제사장은 최후가 비극적이었다. 그가 평생 섬겨왔던 하나님의 법궤를 이방 나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뿐만 아니라 그의 두 아들이 전쟁에서 최후를 맞이하였으며 엘리 자신도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과 비보를 듣고서 98세의 나이에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겨우 씨로 남게 되었던 혈육의 씨인 갓 태어나게 된 손자에게도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인 이가봇이란 이름을 남기고 떠났다. 엘리 제사장이 불운의 최후를 맞이한 것에 대하여 "엘리의 아들들이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는 기록이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우리들은 엘리는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전수해 주는데 실패한 자녀교육의 실패 모델로 생각하기 쉽다. 두 아들이 건달이었으니 엘리는 사람들에게 그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엘리 제사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노경에 엘리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눈이 어두워지는 것에 대해 문자대로 해석해야 할 것인지 비유적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는 논란이 될 수 있지만 본문 앞뒤의 정황으로 볼 때에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의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사로서 소임을 다했던 엘리 제사장의 영적 감각이 노경에 흐려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때문에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사사요, 제사장으로서 그가 부패해 가는 정치적 종교적 시스템 속에서 권력과 부를 보존시키려는 기회도 엿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제사장이 노년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지혜를 가진 자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제사장이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의 측근들에게 권력과 부를 세습시키지 않았다. 그가 누리던 권력과 부를 물려주기 위해 후방 부대에 자녀들을 빼돌리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전쟁터에 그 아들들이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허용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엘리 제사장은 노년에 눈이 어둡고 영적으로 감각이 희미해진 처지에서도 어린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수용했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사무엘이 세 번이나 부름을 받아 자신 앞에 달려올 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사무엘에게 전수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사무엘의 입을 통해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할 용기를 가졌다. 엘리는 그가 누리던 권력과 부를 사적인 재산으로 축적할 욕심을 포기하고 이스라엘과 하나님 앞에 공적으로 계승할 후계자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 이같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사익을 포기하는 용기 있는 행동은 40년의 사사생활을 마감하는 노인만이 할 수 있는 지혜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받은 축복을 우리의 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적 교회를 위해 나의 이익과 상관없는 새로운 후계자에게 양보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철영 목사
수정교회


토-신앙생활 원리
본문 : 딤전 1:12
찬송 : 320장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리들을 언급한다. 우선 그는 자기 직분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충성되이 여겨 맡기셨다고 한다. 아마 바울 자신은 자기가 그렇게 충성된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런 우리도 믿는 바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든 작든 우리만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부족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삶과 사역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맡기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바울은 그 일을 그분의 능력으로 감당했다고 한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는 상관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명령한 것을 그런대로 뚝딱뚝딱 해냈던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제대로 주지도 않고 일을 시키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일을 맡기기 전에 그 일을 감당하고도 남을 능력을 충분히 주시는 분이시다. 종종 "우리는 못해. 나는 못해"라는 사람을 보는데 그런 사람은 내 힘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 일 자체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의 일이 우리 힘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작고 불완전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일하기 전에 먼저 능력을 주신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을 보기 전에 먼저 그분께 집중해서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그 능력을 힘입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래서 감사하다고 한다. 감사는 어떤 일이 다 이루어진 후에 갖게 되는 마음인 동시에,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감사하면서 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아주 크기 때문이다. 사명은 무거워서 사명감으로만은 감당하기 어렵다. 감사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울도 감사함이 있었기에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결코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현실이 내게 가장 필요하고 좋은 현실임을 믿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감사하는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것이 비결 중의 비결이다.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소명이다. 우리의 삶과 직분은 모두 그분이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뜻에 맞게 잘 감당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언제나 그분께 집중해서 그 능력을 힘입는 가운데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감당하자. 새해도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오늘의 기도
먼저 나의 삶과 직분이 다 주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게 하소서. 그래서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힘입게 하시고 무엇보다 감사함으로 그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태하 목사
창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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