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다 여럿이 '하나'를 잘 하는 선교 |2018. 03.20
[ 땅끝에서온편지 ]   <7> 협력선교

허석구 선교사는 2005년에 본교단이 몽골에 파송한 치과의사이자 목사 선교사였다. 당시 55세에 파송되어 왔지만 젊은 청년처럼 몽골어 공부에 열중하였다. 몽골어로 신구약을 타이핑 하였고, 몇 달 후에는 통역없이 심방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인 이영숙 선교사도 마찬가지였다. 두 분은 몽골의 한인사회와 선교사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목회자요 선교사였다. 자기비움과 겸손의 삶이 몸에 배인 부부였다.…

도움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 깊은 교제의 시작 |2018. 03.06
[ 땅끝에서온편지 ]   <5> 도움선교와 관계선교

나를 만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물론 행복의 기준이 다양하겠지만 사회적인 평가를 하더라도 어렵고 곤란한 삶을 살거나 숨진 분들이 있다. 한 명은 보르노르의 '감바트'이다. 내가 처음 보르노르 다닐 당시에 나를 도와 주었고 나도 그를 많이 의지하였다. 내가 마을을 처음 가던 날에 마을 사람을 사귀려고 두 세명의 젊은이가 지나가고 있길래…

기쁨과 감사로, 작지만 값진 교회로 |2018. 02.27
[ 땅끝에서온편지 ]   <4> 처음 세운 교회 지도자, 공가 토야 부부

코민테른(ComIntern), 즉 국제공산당(Communist International)의 영향으로 몽골의 청년들도 동유럽이나 동독 등지에서 기술을 배울 기회가 많았다. 보르노르 마을에도 동독에서 건축을 공부한 부부가 있었다. 공가와 토야 부부였다. 과거에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귀국하면 자동적으로 국가 일터에서 일자리가 주어졌는데, 붕괴한 나라에서는 일자리에 여유가 없었다. 토야의 고향은 보르…

농사로 소득, 컴퓨터 교육 등 지역 개발로 신뢰 쌓아 |2018. 02.13
[ 땅끝에서온편지 ]   <3> 보르노르 마을, 교회 정착기

과거 사회주의 시절에는 대학까지의 모든 교육이 무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는 매 월 생활비가 제공되었다. 그런데 개방 이후에 정부에서 대학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고 대학은 학교 운영상 등록금을 받게 되어서 학비를 전혀 안 내던 사람들에게는 체감 비용이 굉장히 비싸게 느껴졌다. 사회주의의 붕괴, 이는 구 공산권 국민들에게는 심각한 지각변동의 사건이었다. 나라에서 주던 의식주의 혜택이 …

선교사의 첫 마을, 보르노르 마을 개척기 |2018. 02.06
[ 땅끝에서온편지 ]   <2> 몽골인들을 위한 선교사로서의 첫 시작

장래를 고민하던 28살, 결국 나는 선교사의 삶을 사는 것이 남는 삶이라고 여기고 귀국하여 재수를 거친 후에야 장로회 신학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나의 별명은 '몽골'이었다. 졸업하고 당연히 선교사로 갈 것을 알던 동기들이 그렇게 불렀다. 2001년 신대원 졸업 후, 몽골로 다시 들어왔다. 늘어난 건물, 자동차, 번쩍이는 네온사인, 심지어는 전에는 없던 교통신호등까지 거리마다…

몽골, 나의 운명으로 다가온 나라 |2018. 01.31
[ 땅끝에서온편지 ]   <1> 몽골과의 첫 만남

대학시절 나에게 관심은 개발도상국, 구 공산권 그리고 선교였다. 그 외에는 별로 재미있는 삶이 없을 듯 했다. 65세 딱 정년이 보장된 삶을, 주어진 업무만을 하면서 먹고 산다는 것은 한 생애를 살아가는 멋을 못 누릴 것으로 여겨졌다. 원래는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지만 음악이나 글 쓰는 것은 취미가 좋지, 직업으로는 적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개발도상국, 구 공산권, 선교 …

선교사의 노령화 |2018. 01.24
[ 땅끝에서온편지 ]   <完> 한국 선교의 위기

현재 한국 선교에 가장 큰 문제는 선교사의 고령화이다. 10년 안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현장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선교사의 은퇴 준비도 큰일이지만 선교현장에서 활약하던 시니어 선교사들이 은퇴하면 선교지에 큰 구멍이 생긴다. 한국사회도 인구구조가 역삼각형인데 해외선교사의 구조도 똑같다. 은퇴할 시니어 선교사는 많고 젊은 선교사들이 절대 부족하다. 한국교회에는 임지를 구하지 …

13억 무슬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웃들 |2018. 01.16
[ 땅끝에서온편지 ]   <9> 이슬람선교 이야기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이슬람 선교는 헌팅턴의 '문명 간의 충돌'이나 이슬람포비아 담론의 포로가 되어 있다. 한국 교회는 이슬람의 정치성과 공격성을 과장하고 서구와 이슬람 간의 대결구조를 만들고 확산하고 있다. 소수의 과격하고 폭력적이며 급진적인 이슬람주의 집단들이 일으킨 테러와 분쟁들을 보면서 마치 전체 이슬람이 그런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전체 이슬람 안에 있는 다양성을 보지…

무슬림에 대한 연구와 관심 당부 |2018. 01.10
[ 땅끝에서온편지 ]   <8> 이슬람 선교이야기

인도네시아는 중동에서 멀리 떨어진 무슬림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가진 무슬림 세계의 중심이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은 중동 아랍의 모든 무슬림을 합한 숫자보다 많은 약 2억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말레이 종족 무슬림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그리고 싱가포르와 브루나이, 태국 남부와 필리핀 남부 등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공동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

공적 봉사 공적 선교의 필요성 |2018. 01.05
[ 땅끝에서온편지 ]   <9>선교사 비자 문제

한 선교사가 "해외로 나가는 모든 선교사는 각 나라의 비자귀신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어느 나라건 선교사들에게 비자를 흔쾌히 주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선교사를 환영하지 않는다. 필자 역시 볼고그라드로 선교지를 옮긴 후 비자문제로 많은 고생을 했다. 어떻게 비자귀신과 싸워서 비자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고려인 어린이를 위한 여름캠프 |2018. 01.05
[ 땅끝에서온편지 ]   <8> 고려인 선교

쇼트랙 선수 빅토르 안(안현수)의 경기가 있던 날 고려인은 텔레비전 앞에서 춤을 추면서 열정적으로 빅트르 안을 응원했다고 한다. 고려인이 된 빅토르 안은 러시아국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참여하여 메달을 따서 고려인의 자긍심을 세워주었다.  고려인은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독립국가 연합에 거주하는 한민족이다. 러시아와 독립국가 연합에 살고 있는 고려인은 약 50만 명이다…

북한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2018. 01.05
[ 땅끝에서온편지 ]   <7>북한선교의 사명

필자와 가까이 지내던 러시아교회 사역자인 니OOO 목사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북한선교 사명을 받았다. 2014년 10월에 장로회신학교 남북한평화신학연구소와 러시아 개신교회와 함께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한 국제포럼'을진행했다. 이날 포럼에서 PCK 전 총회장인 손달익 목사와 장신대 김영동 교수와 필자와 미국 남침례교 아담 코케르 선교사와 니OOO목사가 발제에 참여…

인도네시아 성탄절 이야기 |2018. 01.02
[ 땅끝에서온편지 ]   <7> 다양성의 일치  

상하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경험은 색다르다. 적도의 나라인 인도네시아는 년 중 무더위가 계속된다. 눈이 오는 대신 성탄절 행사 때는 땀이 비 오듯 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젖는다. 3~4시간 동안 진행되는 성탄절 행사에 참석하여 무더위에 머리가 아플 때는 고국의 눈 오는 성탄절을 상상하면서 폭염을 이기려한다. 시골 목사들은 우기에 시골 비포장 길이 진흙탕이 되어 자전거…

<7>인도네시아 성탄절 이야기 |2018. 01.01
[ 땅끝에서온편지 ]   더위, 테러 위협과 싸우는 인도네시아의 성탄

    상하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경험은 색다르다. 적도의 나라인 인도네시아는 년 중 무더위가 계속된다. 눈이 오는 대신 성탄절 행사 때는 땀이 비 오듯 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젖는다. 3~4시간 동안 진행되는 성탄절 행사에 참석하여 무더위에 머리가 아플 때는 고국의 눈 오는 성탄절을 상상하면서 폭염을 이기려한다. 시골 목사들은 우기에 시골 비포장…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2017. 12.29
[ 땅끝에서온편지 ]   <6> 작은 것이 주는 감동

필자는 2003년도에 블라디보스톡에서 볼고그라드로 선교지를 옮겼다. 선교지를 옮긴 후 아이들은 친구를 잃게 되었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우리 부부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종종 눈물을 훔치며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04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있었던 일이다. 이곳은 공휴일이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2학년인 아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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