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의 꿈

만년 꼴찌의 꿈

[ 시인의눈으로본세상 ]

이재훈 교수
2021년 05월 05일(수) 10:00
프로야구의 계절이 왔다.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나는 매일 경기 하이라이트와 영상 클립을 본다. 시간이 있는 날은 야구중계를 저녁 내내 본다. 함께 사는 가족들의 원성을 들으면서 꿋꿋하게 본다. 가끔씩 MLBPARK나 STATIZ나 Foulball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일 년에 몇 번씩 경기장을 찾기도 한다. 주말 오후나 평일 저녁에 소파에 몸을 파묻고 간식을 먹으며 야구를 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나는 한화 이글스 팬이다. 7-8-3-9-10. 한화 이글스의 최근 5년간 순위이다. 늘 최약체로 평가받는다. 작년엔 10개 구단 중에 꼴찌를 했다. 더군다나 삼미 슈퍼스타즈가 세운 프로야구 최다 연패인 18연패를 달성했다. 지는 게 쉬운 거 같지만 계속해서 지는 건 정말 힘들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걸 프로에서 실천하는 팀이다. 매년 리빌딩과 육성을 모토로 한다. 비싼 연봉선수들을 스카우트 해보았지만 성공사례가 별로 없다. 우승 제조기 김응용 감독도,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도, 국가대표 명장 김인식 감독도 한화에 와서 흑역사를 쓰고 갔다. 매번 지는 경기를 응원하는 한화 팬들의 인성과 인내를 배워야한다고 한다.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게 되면 대단히 복잡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평소 화가 많은 분들이나 기도가 부족한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간절한 기도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며, 마음의 수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한화의 팬들은 지는 경기마저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야구인인 것이다.

정말 지는 게 이기는 것일까. 마음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더 편안해진다. 승패를 떠나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새로운 긴장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한화를 응원할 수 없다. 화병으로 건강을 크게 다칠 수 있다. 이기지 못하고 늘 지는 삶이 있다. 경기에서 자주 지는 유전자가 있고, 자주 이기는 유전자가 있다. 우리는 경쟁을 필생의 업으로 안고 살아간다. 늘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야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야구의 경쟁은 프로경기가 갖는 정체성의 일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팬들은 응원하는 팀에 감정이입을 한다. 현실의 경쟁에서 패배하더라도 프로야구의 경쟁에서는 이기고 싶은 것이다. 현실의 승리보다 경기의 승리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야구경기를 자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9회말 투아웃에 기적 같은 역전이 가능하며, 각자의 포지션에서 모두 제 역할을 잘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지더라도 같은 팀 타자들이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승리를 할 수 없다. 자신이 죽고 남을 살리는 희생타가 있는 것도 야구가 유일하다. 시에서도 자주 야구를 통해 본질을 투시한다. 이장욱 시인은 "까마득한 플라이 볼을 바라보며 아득해지는 써드베이스맨의 비애를 이해하는 이상한 날"('결국')을 통해 삶의 단면을 깨닫기도 한다. 여태천 시인은 "플라이 볼의 실재는/볼에 있는 걸까, 플라이에 있는 걸까./비어 있는 궁리(窮理)에 있는 걸까"('플라이아웃')라며 사물의 이치에 대해 골몰하기도 한다. 우리 삶에 희망이 있는 걸까. 여태천은 "이미 끝난 게임/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터지는 장외 홈런./우리의 생은 펜스 너머로 아득히 멀어지고/낮게 몸을 낮추며 비행하는 저 새는/오늘의 비를 무사히 피할 수 있을까"('전력질주')라고 노래한다. 선수는 승패와 무관하게 매번 최선을 다해 방망이를 휘두르고 베이스를 돌면 된다. 그것이 비를 무사히 피하는 방법이다.

한화 팬에게도 꿈이 있다. 1992년 빙그레 이글스 시절 우승을 했다. 우울할 때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을 기억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누구에게나 리즈 시절이 있는 법이니까. 한화도 언젠가는 다시 우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승을 바라는 것보다 가을야구만이라도 가는 게 최선 아니냐고? 그것이 현실 아니냐고? 아니다. 늘 우승이 목표다. 8회에 '최강한화'를 외치는 팬들의 육성응원을 들었다면 알 것이다.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니까.



이재훈 교수/시인·건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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