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만 원 농가주택의 꿈

이천만 원 농가주택의 꿈

[ 시인의 세상보기 ]

이재훈 시인
2021년 04월 07일(수) 10:00
'멍때린다'는 시쳇말이 있다. 아무생각 없이 멍 하니 오래 있다는 말이다. 멍때리는 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누구나 멍을 때리니까. 멍때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마음이 허하든지 배가 고파 허하든지 무기력해서 허하든지 고통이 극에 달해서 허하든지.

나도 자주 멍때리는 편이다. 깊은 밤 혼자 TV를 무심코 켰다가 멍때릴 때가 있다. 그 프로그램은 아무 때나 켜도 늘 방영된다. 아마 24시간 방영하는 것 같다. 멍때리고 싶을 때는 그 프로를 틀면 된다.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장수하나 보다. 그 프로는 희한한 구석이 있다. 일단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마치 아는 사람이 출연했어? 라고 옆에서 누군가가 물어보기라도 하듯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게 되는 것은 지금 이곳의 결핍 때문은 아닐까. 산골의 원시적인 삶이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사람은 고요를 채우고, 어떤 사람은 자유를 채운다. 어떤 사람은 싸움이 없어 좋고, 어떤 사람은 건강해져서 좋다. 나는 자연인들에게서 공통된 것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고통스러운 세속에서 벗어나 산골을 택했고 그곳에서 상처를 보듬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무욕이 가져다주는 미소가 깃들어 있다. 그것이 다분히 연출된 것이라 해도 도시에서의 파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아파본 사람, 망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삶의 중요한 목록이 있을 것이다. 그 목록이 세상과 절연한 자연인을 통해 투사되는 게 아닐까. 그 프로를 오래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연인들의 사연은 늘 비슷비슷하다. 어쩌면 시청자들에게는 그들의 사연이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그들의 사연과는 무관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곳에 둘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늘 어딘가를 꿈꾼다. 꿈은 늘 이곳에 없는 공간을 이상향으로 만든다. 도시에 살면 시골을 꿈꾸고, 시골에 살면 도시를 꿈꾼다. 나도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도시를 꿈꾸었다. 빌딩을 드나들고 지하철 타는 꿈을 꾸었다. 도시의 매연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무궁화호 기차가 서울의 한강철교를 넘어갈 때면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 꿈은 늘 지금 이곳의 결핍을 드러내준다.

꿈꾸는 유토피아가 문학에서는 아주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것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주는 기쁨을 자주 얘기한다. 하지만 '자연인'처럼 산속에서 혼자 사는 삶은 어떤 부분에서는 형벌에 가깝다. 도피나 유폐와 다름없는 고독한 삶이 행복할 리가 없다. '단순한 기쁨'의 저자 아베 피에르 신부는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한다. 피에르는 "사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목표, 즉 행복을 추구한다.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시대, 어떤 조건, 어떤 문화 속에서 생활하건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하게 마련이다. 타인들 없이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들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혼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구도가 아니라면 인간은 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행복하지 않을까. 타인들과 나누고 실천하는 삶이 인간답게 사는 맛이다. 결국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요즘 나는 농가주택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자주 본다. 세속에서 찾은 유토피아이다. 바닷가 앞에 마당 있는 주택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은 산을 두르고 있는 시골의 작은 집을 보다가 흥분하기도 했다. 이천만 원짜리 농가주택도 있었다. 서울 아파트의 반 평도 안 되는 가격이다. 서울의 집은 못 사더라도 저 집은 살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요원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천만 원이라면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을까.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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