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열고 들어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

누가와 함께 열고 들어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누가복음 <1>

왕인성 교수
2021년 04월 06일(화) 09:22
누가복음은 신약성경의 세 번째 복음서로 복음서 중 가장 긴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데오빌로라는 인물이 동일한 수신자가 되는 자매 편인 사도행전까지 포함하면, 바울 서신 못지않게, 가히 신약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책이다(헬라어 단어로 계산하면 신약성경의 27.5%를 차지한다고 한다). 분량만으로 그 책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400년 가까운 시점 동안 적지 않은 책들이 27권의 정경 속에 포함될지를 놓고 시험대에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큰 부피임에도 누가-행전은 이른 시점부터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교부들에게서 정경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책들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어떤 면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으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누가복음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피고자 한다. 첫째, 누가복음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던 예수님의 재림 지연에 대한 답변의 일환으로 보인다. 임박한 재림을 기대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이 더뎌지자 그 이유에 대한 신학적 고민이 이루어졌고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밝히게 된 것이다. 사도행전 1:6~7에 보면, 주의 나라의 회복, 곧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성취, 예수님의 재림이 맞물린 시기에 대해 제자들이 질문한다. 예수님은 아예 그 시기를 가늠할 시도도 하지 말라고 질문 자체를 원천봉쇄하신다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따라서 누가는 재림의 임박성을 멀리 물러나게 하였고, 이 세상을 도외시한 채 하늘에만 고정되어 있는 성도들의 시선을, 이 땅 위에서도 펼쳐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하여 땅으로 향하게 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즉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종말론적 기대를 유지하면서도, 주님이 이 땅에서도 펼쳐지길 기대하시는 믿음의 실천에 집중하게 하며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이 누가복음이다.

둘째로, 누가복음은 사람들 사이에서 심화되고 있는 적대감과 단절의 문제를 치유하는 성찰이자 대안이다. 필자는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면은 당연히 죄인을 구하러 오신 속죄 사역이 되겠지만, 성도들을 향한 권면의 차원에서는 에베소서 2:14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 본문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죄된 인류 사이의 단절을 회복시키시는 화평의 사역의 선언이자, 아울러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무는 책무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시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개인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포스트 모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의도되었던 상호존중보다는 상대주의의 부작용으로 오히려 곳곳에서 사람들 사이에 벽이 세워지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심화되는 인종범죄 및 국가 간의 자국 이기주의, 지구에 대한 인간중심의 독점으로 인한 생태계의 위기와 인간 소외현상으로 인한 정신병과 자살률의 급상승 등이 그 현상적 사례들이다.

안타깝게도 이 사회적 책무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내 필요가 우선하는 초보적 믿음의 모습을 떨치지 못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예수님의 능력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최적화(?) 되어있다고 판단한 이들이 예수님을 우리 먼저 챙겨주라는 생각으로 독점하려 하자, 예수님은 단호히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의 복음과 관심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소외됨 없이 전파되어야 함을 말씀하셨다(눅 4:42~43).

연재가 진행되면서 구체적으로 살피겠지만, 누가복음의 사회적 관심, 벽을 허무는 실천을 강조하는 몇몇 사례를 살펴보고 이 소고를 마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누가복음은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예수님이 주도하시는 '구원'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오늘날 성도들에게 구원이라는 어휘를 제시하면 영혼 구원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1세기의 사람들은 가난, 질병, 귀신들림, 사회적 차별,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는 모든 사회적 제약과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즉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의 길이시면서도, 사람들의 실제적 필요를 살피러 오신 분이라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구원의 대상은 온 세상이다(2:10). 특히 누가의 족보는 예수님에게서 역순으로 올라가 아브라함을 뛰어넘어 아담과 하나님으로 연결되어 예수님의 이 구원은 모든 인류를 향함을 보여준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자와 구원의 대상을 묘사할 때 남녀의 균형을 맞춘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요셉과 마리아, 시므온과 안나, 나아만 장군과 사렙다 과부 등, 그리고 상대적으로 남성들보다는 소외계층에 속했던 여인들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아울러 세상이 관심을 두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부자들에게 요청하는 건강한 재물의 사용, 죄인과 세리에 대한 관심,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이 현실이었던 상황에서 민족적 문화적 벽을 허물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한다. 또한 이 모든 순종의 길을 가능케 하시는 성령의 역사와 기도에 대한 관심이 누가복음에 녹아있다.

앞으로 16주에 걸쳐 모든 주제를 다 다룰 순 없으나, 온 세상이 구원의 대상이 되길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누가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보여주시는, 보듬고 품어주며 막힌 담을 허무는 사역에 관한 메시지를 나누며 함께 은혜 받기를 소원한다.

왕인성 교수 / 부산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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