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최초의 장로교회

러시아 최초의 장로교회

[ 땅끝편지 ] 러시아 최영모 선교사2

최영모 선교사
2021년 04월 06일(화) 15:49
러시아 최초의 장로교회가 세워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들. 왼쪽부터 김재광 목사가 호텔에서 만났던 고려인 김기음과 그의 아내 김미자, 15년간 신학교 이사장으로 섬긴 김대순 목사(LA 가나안교회), 김재광 선교사와 그의 아내, 오른쪽 제일 끝은 김봉녀(최초의 통역자이자 김기음의 누나)와 뒤에는 그의 남편 콘스탄틴 아르항겔스키, 왼쪽 옆은 필자. 교회 창립 20주년에 교인들이 편집한 사진이다.
러시아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필자보다 3년 먼저 와서 사역하던 김재광 선교사를 만났다. 김 선교사는 캐나다 토론토 영락교회의 원로목사로서, 조기 은퇴 후 이곳에 와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로교회를 설립한 분이다. 그 만남이 앞으로 14년간을 교회와 신학교 사역, 교회 개척 등을 그와 같이 일하는 계기가 되리라고는 그때는 전혀 몰랐다.

김재광 목사의 꿈은 북한선교였다. 하지만 북한선교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자, 공산권선교의 기대를 품고 1989년에 구소련을 답사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호텔에 머물게 된 김 목사는 호텔 로비에서 한 고려인이 지나가는 것을 봤다. 김 목사는 그에게 다가가서 "한국 사람이세요?"하고 물었지만, 그는 힐긋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 없이 지나쳤다. 그럴 때는 포기할 법도 하건만 김 목사에게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었나 보다.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스치면서, 김 목사는 그 사람을 뒤쫓아가 "혹시 조선 사람 아니세요?"하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냐는 물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그가 조선 사람이냐는 물음에는 "예, 내가 조선 사람이오"하고 대답했다. 그에게 목사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김 목사는 러시아에 와서 일하고 싶다면서 비자를 받을 방법을 물었다. 뜻밖에도 그 고려인은 자신이 초청장을 발급해주면 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자기가 뭔데 초청장을 해준다고 할까'하는 의심이 들었고, 다음 날 가져 온 초청장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펜으로 뭐라고 쓴 종이 한 장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안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달리 선택할 여지도 없었다.

캐나다로 돌아온 김 목사는 의심 반 믿음 반으로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가 초청장을 제시했는데, 놀랍게도 얼마 뒤에 비자가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 목사가 만났던 그 고려인은 은행 부총재로서 외국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외국인에게 초청장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그 고려인은 훗날 교회에서 장로가 되고, 한국 정부의 명예 영사와 러시아의 대통령경제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게 된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교회 설립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비자가 나오자 교회를 사임한 김 목사는 선교에 대한 꿈을 꾸면서 1990년 초에 러시아에 입국했다. 외국인은 개인 집에서 머물 수 없다는 법 때문에 그는 호텔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주일이면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개방 후 러시아 최초의 장로교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교인이 많아지자 호텔에서의 모임도 한계가 있어서 시내 중심부에 있는 건물을 빌렸다.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황태자의 궁전으로, 그리고 소련 시대에는 공산당 시중앙집행위원회 본부로 사용됐던 곳이다. 교회 소유의 건물이 마련될 때까지 그곳에서 8년간 예배를 드렸다.

필자는 언어 공부에 주력하면서, 주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로교회에서 협력사역을 했다. 6개월 후에는 약 70km 떨어진 작은 도시에 있는 교회를 토요일마다 가서 사역했으며, 2년 후에는 고려인교회를 설립했고, 3년 후에는 김재광 선교사의 요청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장로교회의 담임을 맡게 됐다. 4년 째에는 장로교회 내에서 한인 유학생 예배가 시작됐다. 근교 도시의 시장에게서 무상으로 땅을 줄 테니 교회를 세워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턱없이 부족함을 늘 절감했다.

러시아에 도착하던 무렵,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했던 우려는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나보다 앞서 오셔서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다. 나는 그냥 그분을 따라만 가는 되는 것이었는데. 검은 땅에서 피어나는 흰 꽃들을 보면서, 상념으로 보냈던 초기의 나날들은 차츰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최영모 목사 / 총회 파송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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