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교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왜 선교학을 가르치지 않는가?'

[ 땅끝편지 ] 체코 이종실 선교사7

이종실 선교사
2021년 03월 04일(목) 13:33
1781년 신성로마 황제의 '관용의 칙령'으로 현재 체코 공화국 영토인 보헤미아 지역을 포함해 구 합스부르크 통치 지역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허락됐다. 그때 보헤미아 프로테스탄트들은 예배당과 함께 학교와 묘지를 만들었으며, 선조들이 묻힌 묘지는 오늘날에도 교회 묘지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첫 13년 동안은 현지 교회와 사회를 배우고 관찰하는 일에 집중했다. 겉으로 보기엔 미약해 보였지만, 현지 교회들은 한국교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 민족, 지역, 세대 간의 긴장이 얽힌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15세기 종교개혁 운동 덕분에 유럽 대륙의 다른 지역에 비해 보헤미아에선 17세기 초까지 약 한 세기 반 동안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와 남프랑스의 왈도파들, 칼뱅이 태어난 지역에서 칼뱅 출생 반세기 전에 발흥했던 피카르디파들, 영국에서 위클리프를 추종하던 로랄드파, 그리고 후에 독일 종교개혁에서 이단으로 비판을 받았던 재세례파들, 그 외 많은 분파들이 보헤미아 지역으로 스며들어와 체코의 개혁파들과 섞여 살았다. 그리고 이후 한 세기 동안 그들은 로마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낙인찍혀 박해를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오늘날 현존하는 지역교회들은 그들의 후예로 저마다의 신앙유산과 역사적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체코 영토 안에서 함께 살았지만, 개혁파들의 삶의 가치관과 방식은 '게토화'되어 마치 '디아스포라'처럼 존재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지역 사회와 시민들의 눈에 개신교회는 '섹트(이단)'로 비친다. 코빌리시교회 슈토레크 목사가 씨름했던 '폐쇄성'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적 물적 자원의 절대 부족에도 불구하고 지역 교회들은 이 장벽을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시대에 구축된 체코의 사회 안전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표방하고 있어, 지역 교회가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과 접촉할 기회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반면 오랜 역사 속에 전통처럼 굳어져 이어지는 교회 내부 활동들은 한국교회 못지 않게 많다. 사회로부터 고립돼 있는 교회는 반기독교적인 사회 분위기에 순응하듯 스스로 폐쇄적인 경향을 갖게 됐다. 대체로 교회는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며, 겸손하고 검소하고 희생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비춰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일방적이고 정복적인 선교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강하다.

필자의 눈에 비친 체코 교회들은 이미 선교적 교회였고 자신들의 선교적 과제를 인식하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체코 슬로바키아 목회자 20여 명과 대화 그룹을 형성하게 됐고, 이 그룹은 비전을 공유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 2007년 1월 초교파 단체인 '중부유럽 선교연구센터'를 발족했고, 첫 컨퍼런스가 프라하 코빌리시교회에서 열렸다. 컨퍼런스의 주제는 '우리는 선교학이 필요한가? 만약 필요하다면 왜 우리는 그것을 가르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발전시키지 않는가?'였다. 실천신학 또는 디아코니아 관련 신학을 가르치는 체코 슬로바키아 신학교 교수들, 목회자 7명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일하던 김동성 목사를 발제자로 초청했다. 이 컨퍼런스에 참석한 46명은 대부분이 선교 분야와 관련이 있는 실천신학, 디아코니아신학, 종교학 전공자였다. 당시 발제와 토론을 통해 공감하는 생각과 구체적인 과제를 발표했는데, 이 성명서는 지금도 교회들의 각종 모임에서 인용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첫째, 성경은 기독교회의 중요하고 유일한 선교적 문서이다. 둘째, 오늘날 크리스찬들이 선교적 역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복음을 증언할 상황을 조직적으로 발전시키도록 교회들에게 권면한다. 셋째, 유럽의 종교 상황의 변화에 대한 리서치가 필요하다. 넷째, 각 신학교의 선교학 강조와 커리큘럼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중앙유럽 지역에서 실천신학 연구와 리서치로 교회의 선교적 소명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도록 공동으로 노력한다'였다. 이 과제를 중심으로 중부유럽 선교연구센터의 활동이 전개됐다.

중부유럽 선교연구센터에서 지금까지 함께 동역하던 목회자 신학자들 가운데에서, 후에 교단 총회장, 노회장, 신학대학교 총장, 체코교회협의회 회장 등 지도자들이 나왔고, 체코교회협의회가 처음으로 '선교와 전도 위원회'를 조직하는 변화까지 이끌어냈다. 선교에 대한 담론과 이해가 점차 체코 슬로바키아 교회와 각종 신학교육 기관들 안에서 확대됐다.

이종실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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