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속에서도 꽃피운 뮬러의 기적

팬데믹 속에서도 꽃피운 뮬러의 기적

[ 창간75주년기획 ] '역사에게 내일의 길을 묻다' 2. 매일 기적 일으킨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
콜레라로 급증한 1만명의 고아들 위해 일평생 헌신

김보현 목사
2021년 02월 23일(화) 08:21
조지 뮬러가 2천 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해 지었던 다섯 동의 시설 중 하나로 현재도 외형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일부는 교육시설로 매각되고 일부는 주택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뮬러고아원은 성인이 되어 떠날 때까지 학습은 물론 직업교육까지 함께 받았던 생활, 교육, 훈련, 신앙공동체였다.
영국 교회의 유산을 찾아 떠나는 출발점은 현 사역지인 브리스톨(Bristol)이 여러모로 적절할 듯 하다. 영국의 그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신앙 유산을 간직한 곳이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새롭게 조명해 볼 만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교 사역을 위해 영국에 도착했을 때 히드로공항에서 브리스톨까지 안내해 준 집사님 가정을 먼저 들르게 됐다. 들어서며 구조와 큰 건물 규모가 특이하다 싶었는데 이곳이 바로 조지 뮬러 목사가 고아들을 돌보았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는 설명에 곧 감동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비록 내부가 개조돼 수십 세대가 생활하는 개인 소유 주택이 되었지만 외형은 19세기 중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라 했다. 이렇게 시작된 뮬러 목사와의 만남은 그 후로도 다양하게 이어지며 만날 때마다 새로운 도전과 깨달음을 얻고 있다.

1만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
# 하나님만 의지한 뮬러, 평생 사역지인 브리스톨에 정착

독일 크로펜슈테트(Kroppenstedt)에서 출생한 뮬러(1805~1898)는 대학 재학 중 회심하여 청소년기의 방황과 형식적 신앙을 떠나게 했지만 동시에 그 선교 소명은 안락한 노후를 위해 아들이 목회자 되길 바라며 후원했던 부친의 바람과의 결별도 의미했다. 이로 인해 중단된 경제적 지원이 바로 평생 하나님만 의지하여 구하고 응답 받는 삶과 사역의 원칙을 일찍이 경험하게 했다.

선교의 꿈도 군 입대 희망도 번번이 좌절되는 중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1829년 선교 훈련을 위해 영국을 찾았으나 수개월 만에 건강 악화로 런던을 떠나 영국 서남부 데본(Devon)으로 이주해 요양하게 된다. 이곳에서 평생 동역자 헨리 크레이크를 만나고, 목회 훈련 받으며 1830년에는 가정도 이루게 된다. 건강을 회복하고 무보수로 목회 사역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크레이크의 초청으로 평생 사역지 브리스톨로 부임하게 된다.

뮬러가 브리스톨에서 목회를 시작한 1832년, 이 도시는 또 다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콜레라로 수많은 인명 희생이 시작된 해였다. 인도 벵골지역 풍토병이 19세기 가장 치명적 팬데믹으로 변한 데는 제국주의 팽창과 수탈 무역이 한몫했다. 군대 이동과 교역로를 따라 콜레라는 유럽을 거쳐 전세계에 퍼지게 됐다.

# 콜레라 팬데믹으로 급증한 고아들을 돌보다

당시 브리스톨은 콜레라의 집중 타격을 입을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중세 이후 잉글랜드 제2의 도시로, 17~18세기 해상 교역 중심지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영광과 발전을 누렸으나 19세기 초 인구 10만의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높은 인구 밀도와 하천의 오염, 식수 문제 등이 겹치며 콜레라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도심 항구 주변이 슬럼화 하자 도심에서 부를 축적한 이들은 저지대 항구 지역을 떠나 고지대에 새로운 주거지를 지어 이동하게 된다. 1832년 이후 세 차례(1849, 1854, 1866) 콜레라 팬데믹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남겼고 오늘날 코비드19와 유사하게 높은 성인 사망률은 고아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브리스톨에 도착해 목회에 힘쓰는 한편 성경연구원(Scriptural Knowledge Institution) 사역을 통해 말씀으로 잠든 신앙을 깨우고자 애쓰던 뮬러는 이러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도심 인근 윌슨가에서 첫 어린이집(children's home)을 열어 30명을 돌보았다. 이내 같은 거리에 세 개의 공간을 더 마련했다. 그러나 넘쳐나는 고아들은 다음 계획으로 그를 인도했다. 주택가 외곽 언덕에 3백 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큰 집을 짓고자 했다. 오직 기도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알렌(1849), 브루넬(1857)하우스에 이어 후에 뮬러하우스로 불리게 된 건물이 세워졌고(1862), 데비(1869), 카봇(1870)하우스까지 완공됐다. 어느덧 돌보고 함께 일하는 이들이 2300명을 넘어섰다.



# 기숙사학교, 직업학교 등 거대한 신앙공동체로

이는 단순한 고아원이 아니라 기숙사 학교, 직업 학교, 신앙공동체였다. 당시 무료 보육시설은 전무했고, 영국 성공회가 1881년에 비로소 무료 보육시설 운영을 시작했으니 시대를 앞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곳에서 자란 자녀들은 일 자리를 구하러 다닌 것이 아니라 인력이 필요한 이들이 역으로 뮬러 목사에게 면접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 또한 성적도 일반 학교보다 우수해 아동학대를 의심한 당국의 감사를 받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92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자 언론은 그를 '브리스톨의 기적'이라 표현하며 경의를 표했다. 그 기적은 5만 번의 응답 횟수, 엄청난 재정 규모 만을 뜻하지 않는다. 문제를 향해 뛰어들었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듯 브리스톨의 방치되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의 길을 보이며 인도했던 것이다.

시설의 운영과 건축이 한참 진행되고 네 번째 콜레라 팬데믹이 브리스톨을 덮쳤을 즈음 한 기록에는 거리에서 그를 만난 한 농부의 고백이 전해진다. "내가 그 분이 누구인지 몰랐다면 세상 걱정 없는 신사가 지나간다 생각했을 겁니다. 그 분의 얼굴에는 시편 23편이 쓰여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적이 아니고는 이룰 수도, 지낼 수도 없었던 일상과 사역 중에서도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평온한 걸음에, 감사가 넘치는 얼굴을 통해 보여 주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생 1만 명 넘는 고아들을 돌보는 중에도 200명 이상의 해외 선교사를 후원하고 70세에 사역을 내려놓은 뒤, 20년 동안 전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요 선교사였다.

# 지금도 기적을 이어가고 있는 '뮬러들'

그러나 진정한 브리스톨의 기적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 시내에 있던 뮬러재단 박물관과 사무실이 애슐리다운 옛 터로 돌아왔다. 그곳에선 장성해 독립하는 수많은 자녀들은 물론 선교지로 떠나던 허드슨 테일러도 기도를 받았다는 낡은 책상을 지금도 만져볼 수 있다. 수많은 일상의 기적을 기록한 낡은 수첩과 일기, 사진도 감동적이지만 가장 큰 울림은 전시물 마지막에 기록된 '뮬러들(Mullers)'의 고백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뮬러 목사님의 정신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라, 모든 일은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며 결정하라'" 지금도 살아있는 뮬러들은 기적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재단에서는 세계 곳곳의 6천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뮬러 목사가 사용했던 책상을 비롯해 아이들이 입었던 옷, 장성해 떠날 때 들었던 짐가방 등 1800년 대 생활상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옛 애슐리다운 건물로 이전해 오기 전 지난 60년 간 자리했던 코담파크 7번지 뮬러하우스 내 박물관 모습.

12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이곳에서 살아 있는 기적을 만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세상이 변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두려움 없이 응답했던 결단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국가 시책, 사회 변화뿐 아니라 작은 아이의 바람에 대한 귀 기울임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2차 대전 후 대규모 시설을 기피하자 건물을 매각, 가정 단위로 분산해 이들을 돌보았다. 아동복지가 정착되고 고아 문제가 해결되자 지역의 교회, 학교를 통한 후원 사역으로 전환하고 전쟁과 질병 가난으로 여전히 기적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사역하고 있다.

지금도 그 언덕에 올라서 보면 어린 자녀들과 함께 도시와 산천을 바라보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기대하며 기도하던 그의 간구가 느껴지는 듯 하다.



김보현 목사 / 총회 파송 영국 선교사
알고보면 친숙한 도시 '브리스톨'     '역사에게 내일의 길을 묻다' 웨슬리 형제의 감리교 운동 출발지이자 양화진에 안장된 항일 애국 언론인 베델의 고향    |  2021.02.23 08:29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