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없는 청년 정책

청년 없는 청년 정책

[ 논설위원칼럼 ]

이재혁 총무
2020년 11월 30일(월) 11:32
11월 23일 아침, 우연히 2020년 11월 22일(일)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에 등록된 기사를 봤다. 교단 내 청년 관련 실무 지원을 한 군데로 통합한다는 얘기였다. 기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총회 교육자원부(부장:황세형 총무:김명옥)가 지난 10일 105회기 1차 실행위원회를 열었고, 그곳에서 필자가 소속된 청년회전국연합회와 이외 청년위원회, 청년분과 등 다양한 명칭으로 청년에 관련된 조직의 지도, 교육과 훈련 등 일체를 교육자원부 내 청년부에서 통합적으로 감당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기사를 들여다보니 이에 관한 논의는 103회기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2020년 올해가 105회기이니 약 2년 동안 논의한 셈이다. 기사를 읽은 직후 마음이 불편했다. 필자 역시 103회기 무렵부터 청년회전국연합회(이하 '장청')에 소속되어서 약 2년 동안 활동 했지만 이와 관련해서 공문을 받은 적도, 지나가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들어본 적 또한 없다. 혹시 장청이 응답하지 못해서 장청만 논의하는 자리에 불참한 것인가 싶어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자세히 보아도 '청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세대를 위한다' 지역교회에서부터 노회, 총회까지 젊은 세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청년세대로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부분이 중년 남성으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충분하게 조사하지 않은 채 그들의 생각으로 논의되어 결정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은 선배(기성세대)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청년세대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며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많은 순간 감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청년과 관련한 정책이 결정될 때 청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청년세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실질적인 문제로 부딪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그것만큼 아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들의 경험이 청년세대보다 다양하고 많기에 결과적으로 좋은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된 정책도 그렇다. 흩어져 있는 청년 단체의 힘을 모아 하나로 만드는 것은 분명 좋은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 번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길 부탁하고 싶다. 누군가 자신의 집에 들어와 멋대로 인테리어를 바꾸었다고 했을 때, 이전의 인테리어보다 미적으로 뛰어나다고 해서 그것을 쉽사리 용납할 수 있을까.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보사 신학춘추의 기자로 활동하며 한 여성 목사님을 인터뷰했을 때 들은 "나는 실패할 기회를 갖고 싶다"고 했던 말이 요즘 계속해서 떠오른다. 좋은 결과를 내는 청년 관련 정책이 아무리 많이 생겨나도 그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청년이 소외된다면 청년 세대는 정책에 깊이 공감하고 좋은 정책을 마련한 기성세대에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자라 부모가 된 후 '그때 그랬구나'하며 부모의 마음에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감동을 느낀다고 해서 자녀였던 시절의 아픔이 쉽사리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함께 소통하고 만들어나가야 할 시기를 지나 뒤늦게 깨달은 감동은 과거 지향적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녀가 어린 시절 자신을 원망하다 뒤늦게 마음을 알아주는 것보다 힘들고 더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발맞춰 나가는 것이 자녀와 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장청 71회 임시총회를 하던 날이 생각난다. 당시 우리 임원은 회의 진행법을 정확히 알지 못해 회의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마침 임시총회에 참석했던 선배로부터 정확한 회의 진행법을 듣게 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참 고마웠다. 하지만 그 선배는 우리 대신 회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청년에 관련한 정책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처음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처음이기에 서투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기성 세대도 인생을 처음 살며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실수 없는 좋고 효율성 있는 교회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시대는 달라졌고 청년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청년들의 생각 또한 달라졌다. '좋은 정책' 이전에 '좋은 소통'이 필요하지 않을까? 청년이 한국교회의 미래라면 우리 청년세대에게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실패하며,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날 기회가 필요하다.

이재혁 총무/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