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어린 사과

진심어린 사과

[ 공감책방 ] '사자가 작아졌어'와 '용서 없이 미래없다'를 통해 본 용서의 의미

황인성 목사
2020년 11월 13일(금) 14:54
#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아프리카의 맹수 사자가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나니 개울가에서 헤엄쳐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작아져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어린 가젤이 사자를 개울에서 구해줬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이 사자는 어제 자신의 엄마를 잡아먹은 원수였다. 다시 물에 집어넣으려 하자 몸집이 작아진 사자는 어린 가젤의 마음을 달래려고 안간힘을 쓴다. 예쁜 꽃을 주기도 하고, 멋진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엄마가 더 생각날 뿐 어린 가젤의 슬픔을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그럼 날 먹어...' 사자는 자신이 엄마 가젤에게 그러했듯이 자신을 잡아먹으라고 스스로 접시 위에 올라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초식동물인 가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자는 곰곰이 어린 가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엄마를 잃은 가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는 가젤에게 다가가 오랫동안 안아 주면서 진심이 담긴 사과를 건넨다.
"널 슬프게 해서 미안해"



자신이 폭력을 당한 방식대로 되돌려주는 것이나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위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바로 화해의 첫걸음임을 그림책 '사자가 작아졌어'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사자가 작어졌어' 중에서.


# 우분투와 회복적 정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몬드 투투가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용서의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1948년부터 남아공에서 시행된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흑인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한 도구였다. 특별히 차별에 반대하며 시위 중이었던 흑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69명의 사망자와 수 백명의 부상자를 낸 1960년 샤프빌 학살 이후 그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 속에서 투투 대주교는 1994년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하여 공개적이며 진정성 있는 고백을 하는 가해자들에게 죄를 묻지 않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실제로 조사기간 동안 7112명 중 849명이 사면을 받기도 했다. 투투 주교는 응구니족 언어인 '우분투'를 언급한다. '우분투'의 의미는 관대하고 호의를 베풀며 친절하고 다정하고 남을 보살필 줄 알고 자비롭다는 뜻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관계 속에서 서로 어우러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의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아파르트헤이트 지지자들조차도 그들이 그토록 열렬히 지지하고 집행했던 사악한 체제의 희생자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윤리적 가치판단이 부질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근본 개념인 '우분투'에서 흘러나온 판단이다. 우리의 인간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악행을 저지를 사람들의 인간성은 좋든 싫든 피해자들의 인간성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해와 고통을 가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도 어쩔 수 없이 인간성을 침해당하게 된다"(p125-126)

투투 대주교의 책 '용서없이 미래없다'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통한 화해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사과를 한 사자는 다시 몸집이 커졌다. 여전히 사과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사자는 지금도 가젤을 쫓아다니면서 용서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가젤이 무서워할 뿐.


황인성 목사 / 책보고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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