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때 묻은 무명 손수건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때 묻은 무명 손수건이 되어야 한다

[ 목양칼럼 ]

김명서 목사
2020년 11월 20일(금) 10:00
필자는 항상 강대상에 부드럽고 하얀 무명 손수건을 준비해 둔다. 강의나 혹은 세미나 또는 부흥회를 갈 때도 같은 손수건을 요청하곤 한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종류의 손수건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하얀 천으로 투박하게 만든 무명 손수건을 손에 쥐고는 설교를 하든지 강의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화려하고 좀 값비싼 손수건도 많은데 나는 왜 이런 재질로 만든 손수건에 집착하는가?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필자 안에 숨겨진 옛날 추억 하나를 끄집어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유독 필자를 아끼시며 좋아 하셨다. 노년이 되시면서 항상 손자가 목회를 하는 곳으로 오셔서 교회 다니며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바램을 이야기하곤 하셨지만 목회 현장에서 할머니를 모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계신 시골을 가면 죄송한 마음에 용돈과 사탕을 한봉다리 사다 드리곤 했다. 필자가 드리는 용돈을 받으면 늘 때 묻은 손수건에 그 돈을 넣어서 장롱 안에다 잘 간직해 놓곤 하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할머니는 목회하는 손주에게 줄 것이 있다며 장롱에서 때 묻은 손수건을 꺼내셨다. 그 안에 있는 사탕 몇 개, 그 동안 필자가 드렸던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몇 장을 간직했다가 주는 것이었다. 사실 때 묻은 무명 손수건 안에는 목회를 하는 손주에게 가서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숨겨 놓으신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필자의 어머니도 항상 할머니와 같은 하얀 무명 손수건을 사용하셨다. 그 손수건 안에 온갖 서러움이 묻어있다. 시골 농사 지으면서 육남매 가르치느라 흘린 땀과 모진 시집살이가 다 들어 있는 무명 손수건이다. 자녀들 넘어져서 어디라도 다치면 얼른 손수건 꺼내서 쌔매주기도 하고, 코 닦아주고, 더러운 것 닦아주고, 그것만이 아니라 가정 건사하면서 남모르게 흘린 당신의 눈물이 담겨 있는 손수건이다. 그래서인가 빨고 빨아도 때가 없어지지 않아 이제는 누렇게 변해 버린 손수건이다. 메이커도 아니다. 더욱이 좋은 재질로 만든 것도 아니다. 그냥 이름이 없어서 무명 손수건이라고 부르는 볼품없는 손수건이다.

목회를 하는 필자에 건네주었던 잊지 못할 손수건이 있다. 금요 기도회 인도를 해야 하는데 그날따라 몸살로 아주 힘들었다. 통성 기도를 하는데 땀, 콧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었다. 기도를 마친 후 눈을 떠 보니 강대상에 누군가가 손수건 하나를 올려놓았다. 목사인 필자가 흘리는 땀과 콧물이 너무 안타까워 살며시 강대상에 올려 놓은 손수건. 본인이 사용하던 손수건이지만, 그 안에 그 분의 땀이 묻어 있고 눈물이 묻어 있을 것이다.

인천가좌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17년, 성도들의 삶의 현장을 심방하다 보면 그 어디 전쟁이 아닌 곳이 없다. 이제 저들의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목사들이 무명 손수건 되어서 닦아주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흘리는 저들의 땀을 교회가 손수건이 되어서 닦아주어야 한다. 백성들이 흘리는 눈물을 누군가 손수건이 되어 닦아주어야 한다. 주님도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명 손수건으로 제자들의 아픈 상처를 싸매주었듯이 오늘 누군가는 때 묻은 무명 손수건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피 묻은 손수건으로 우리를 다시 씻어주고 닦아주며 용서했듯이 오늘 누군가는 때 묻은 무명 손수건이 되어야 한다.

김명서 목사/가좌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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