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상 향해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다가가야

교회, 세상 향해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다가가야

[ 8-9월특집 ] 8.포스트코로나 시대 일상의 재구성: 문명 위기 극복을 위한 느림의 미학

김정형 교수
2020년 09월 17일(목) 14:50
2020년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오늘날 인류 문명이 처한 위기 상황을 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인류 문명이 지금처럼 고도로 발달하지 않았다면, 기후 변화가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지 않았다면, 야생동물에게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될 가능성도 별로 없었고, 혹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토록 순식간에 전 세계 많은 나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로 가시화된 오늘의 위기를 궁극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오직 인류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대안적인 문명 창출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지금의 사태로 인해 겪는 많은 불편함 때문에 과거의 일상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다음에도 우리는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일상을 함께 꿈꾸고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생활 속 거리두기의 일상화'이다. 전염성 높은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생활 속 거리두기는 서로 간의 물리적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수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할 때, 사회적 거리두기나 생활 속 거리두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고집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과거의 일상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서로의 고유한 권리를 침범했던 잘못된 관행이나 습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의 안전한 공간을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고유한 정체성과 개성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삶의 공간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

쪽방촌에 다닥다닥 모여 사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적정한 안전공간이 보장된 쾌적한 거주 시설을 마련해 주는 일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노동공간을 보장해 주는 일, 그리고 사회로부터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차별과 배척을 받아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는 안전한 사회적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 모두 필요하다.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예배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는 나라, 그래서 생명과 평화가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교회가 당연히 이 모든 일에 가장 앞장서야 한다. 교회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포스트코로나 시대 생활 속 안전거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일상의 모습과 관련해서 조금 천천히 걷는 삶, 조금 느리게 사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각자 맹목적으로 달려왔던 분주한 삶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고민하며 스스로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뿐 아니라, 원치 않지만 분주한 삶을 강요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식할 수 있는 여유를 보장해 주고 모든 사람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근심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고유한 속도로 (어떤 사람은 조금 빠르게,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느리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달간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전에 없이 불편한 삶을 감수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후 변화로 촉발된 인류 문명의 위기, 지구촌 생태계 전체의 위기다. 아마도 우리는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서 코로나19로 인해 겪고 있는 지금의 불편보다 훨씬 더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는 다소 불편하고 조금 느리더라도 지속 가능한 삶, 나 자신과 이웃과 자연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 전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을 일상에서부터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한국교회도 스스로 갱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선교적 헌신은 분명 선한 것이지만, 그러한 선한 마음이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이웃의 고유한 권리를 침범하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표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와 이웃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 가운데 우리의 이상을 이웃과 지역사회에 성급하게 강요하기보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설득하고 함께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안전한 공간을 확보받고 싶듯이, 교회 역시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선교 활동의 중단이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육신적 선교의 충실한 실천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도 교회는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이 결국 승리를 얻는다'는 옛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 지구적 재앙의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은 좁은 의미의 교회 중심적인 신앙을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품는 우주적 신앙을 가지고, 창조자 하나님의 선한 뜻이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미래를 소망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우주적 신앙과 소망 아래 교회 안팎의 선한 사람들과 협력하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 거듭나며 세상의 소망이 될 것이다.



김정형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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