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종교 공간, 집

새로운,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종교 공간, 집

[ 8-9월특집 ] 7.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교회와 예배: 그 혼종성을 성찰하다

이민형 박사
2020년 09월 11일(금) 17:33
'오늘이라는 예배'에서 티시 해리슨 워런은 일상에서의 기독교 영성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교회가 아닌 교회 바깥의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아닌 그 외의 시간 동안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신앙을 실천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대부분 가정 내에서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반복되어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이다. 잠을 자는 것과 잠에서 깨는 것처럼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기본 행위, 혹은 침대를 정리하고, 이를 닦고, 남은 음식을 먹거나, 이메일을 확인하고, 친구와 통화하며, 차를 마시는 것처럼 가정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워런은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탐구한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많은 현대인들, 특히나 그동안 종교 생활에 있어 성과 속의 공간 구분이 명확했던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일상 속 신앙생활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리를 평범한 하루의 결에 대고 문지르는 법을 배워야만"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염이 막 시작되던 시기만 해도 교회의 온라인 예배 전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기독교인들은 그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점차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2020년 7월 한 교단 신문사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예배에 만족하지 못하는 성도들 (전체 응답자의 41.0%)이 꼽은 주된 사유는 "현장 예배만큼 집중할 수가 없어서" (71.6%)와 "예배의 현장 생동감이 떨어져서" (65.1%) 였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가정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전제 아래 보자면, 위와 같은 대답은 결국 가정을 예배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상당수의 성도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조금 발전시켜 보자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제공된다 한들 익숙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일상의 공간인 가정은 여전히 종교 활동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코로나19 상황의 장기화 전망으로 인해 온라인 예배가 기독교의 새로운 종교적 제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결국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라 예배에 집중할 수 없는, 집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거룩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다. 거룩한 공간으로서의 가정, 기독교인들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잊고 지낸 이 개념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양한 의견이 가능하겠지만, 일상성이 가득한 공간에서 종교적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기억을 매개로 하는 신성함의 체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결국 기독교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진리의 기억을 각자의 집에서 어떻게 불러일으킬 것인가가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삶의 주 무대가 된 가정을 거룩한 공간으로 인지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집을 단순히 세속적인 가족의 공간을 넘어 성스러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작게는 기독교인 개개인들의 신앙생활 및 영성 훈련이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익숙한 공간에서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떤 공간에서 종교적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그 공간에서 신의 현현을 경험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되고, 거기에 규칙적인 예배 생활이 더해진다면 그곳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공간으로서의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성을 가진 매개체들이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기억 행위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집 안에 놓는 것만으로도 살림거리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 다양한 상징물들을 집 안에 들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집 안에 작은 제단 (Altar)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을 집 안에 만들어 놓는 것은 그 시작부터 진지한 종교적 실천이다. 그다지 어려운 작업은 아닐 터이다. 작은 탁상에 차분한 색상의 천을 덮고, 그 위에 십자가와 초 (전기초도 좋다), 성경책만 놓아도 좋다. 가능하다면 의미 있는 물건들을 올려놓아도 좋겠다. 매일 아침이나 밤에 그곳에 잠시 머물면서 초를 켜고, 기도를 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던 일상의 공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된 것이다.

제단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이 땅에 예수의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분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신 기독교의 복음을 매일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위는 온라인 예배가 가지고 있는 (일방적 전달에서 오는) 필연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는 교회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날로 무뎌지는 기독교인 개인의 영성을 회복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그렇게 집 안의 작은 공간에 거룩함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일상의 체취로만 가득했던 공간이 분명 달리 보이게 될 것이다. 워런이 집 안 곳곳에서 신앙의 묵상을 했듯, 집 안에서 하는 활동들에 종교적 의미가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 코로나19로 인해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공간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의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 예배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후, 교회 공간의 디지털화는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부 신학자들은 온라인 예배뿐 아니라 온라인 교회의 등장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도 사람들은 이미 익숙해진 새로운 예배 형식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경우가 더욱 빈번해 질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온라인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하는 논의와 더불어 어떻게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할지, 가정이라는 공간이 주는 익숙함 속에서 낯섬, 혹은 거룩함을 경험하게 할 방법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언어"와 "영상"이라는 매개로는 부족하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도 한 두 시간이고, 책을 보는 것도 한 두 권이다. 언어의 설득력보다 더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한 경험이 있어야 집에서도 익숙함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피폐해진 영성을 호소하고 있는 지금, 집 안에 제단과 같은 상징물을 가지고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그 앞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기억하며 일상의 공간에 새로운 틈을 만들어 보자.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고, 지쳐만 가는 비대면의 신앙생활에 새로운 활로가 열릴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풍성함 안에 거하는 거룩한 기독교인이다.


이민형 박사/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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